국회 상임위원회의 대정부 질의가 있었다. 정책 공론장이 돼야 할 상임위가 건설적 논의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더 주력했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들이 대정부 질의에서 질타하는 모습과 자기 방어하는 모습이 ‘짤’로 만들어져 지지층 결집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여당 전 대표와 야당 대표의 좌충우돌 자기주장에 건강한 논의가 소통돼야 할 사회는 경연 프로그램 무대로 바뀐 듯하다. 지지자들도 눈과 귀를 가리고, 지지하는 정치인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한다. 논점을 흐리는 ‘정치 탄압’이란 반복되는 프레임으로 진실을 묻고, 지지자들은 맹목적으로 결집한다. 팬덤 정당으로까지 확대되는 팬덤 정치다.
팬덤은 주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개념인데, 어느새 정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 민주화와 관련 있다. 정치 민주화 이후 유권자 지위가 ‘정치에 동원되는 객체’에서 ‘정치를 소비하는 주체’로 상승했고, 정치인은 선택받는 객체가 됐다. 팬덤 경제학은 정보와 제품이 넘쳐나는 현시대는 고객이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쉽게 옮기기 때문에 팬덤 없는 비즈니스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치도 다를 바 없다. 유권자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하면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팬덤 정치가 흥하는 이유다.
팬덤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성행할까? 팬덤은 소속 본능에서 시작된다. 가족에서부터 학교 그리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또는 구성원이 정한 가치 기준에 충성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게 싫다면 반대의 가치 기준을 따르며 동질감을 찾아 마음의 안식처로 떠난다.
근대화 이후 자본주의가 강화되면서 시민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이 양극화 심화로 흔들리게 된다. 저소득층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기회를 점차 상실해가면서 다음 세대로의 경제적 전이는 점점 어려워진다. ‘경제적 빈곤의 세습’에 대한 불안정한 심리 상태는 ‘집단지성에 의한 사회적 연대’보다는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구조의 피해자’라는 선동에 끌리게 한다. 정치인들은 불평등으로 파생된 불만을 성별, 성적 지향, 직업군, 특정 계층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 세력을 구성하고자 한다. 특정 계층의 관점을 대변하게 되고, 집단화로 응집력을 강화하는 ‘정체성 정치’를 통해 팬덤을 만들어낸다.
팬덤은 정치적 부족주의로 진화될 수 있다. 부족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인종·언어·관습 등을 가진 집단이다. 주로 보편적 가치가 태동하기 전인 전근대화 사회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부족은 소속 집단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추구한다. 동시에 부족은 외부의 접근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배척한다. 현대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반대 의견은 가짜 뉴스고 반대파는 거대 악으로 치부된다. 현대사회는 다원주의 사회다. 그런데 차별 의식이 강화돼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리게 되면서 이성적 판단을 넘어 동조하는 사람끼리 부족을 이루게 된다.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기록적 수준의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양 정치 진영 모두에서 맹렬한 정체성 정치를 목격하게 됐다”고 단언한다. 곳곳에서 정치적 부족주의의 위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성격이 혼합된 정치적 부족화의 우려가 있다. 정치인이 잘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기 때문에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정치인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올바르다’는 자기의식을 반복적으로 증명하면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팬덤 정치의 위험성은 공적 공간을 변형시켜 공공 이익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정치인들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는 장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팬덤 정치가 강화되면 절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 정치인들은 미국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왜 약화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특정 계층 이익만을 대변한 정체성 정치의 한계다. 우리 스스로도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유권자가 소비자이기에 정치인들은 그에 맞는 상품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미사여구보다는 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문제 해결을 위해 사고하고, 그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