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쿼바디스 아메리카

입력 2022-09-05 04:02

미국이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파장이 만만찮다. 한국산 전기자동차가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뒤통수를 맞았다”면서 “미국이 한국에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당혹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미국은 예전과 다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기반으로 동맹 복원을 외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도 자국 우선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세계는 미국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빛내는 ‘언덕 위의 등불’이자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는 필수불가결한 국가로 여겨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 제조업이 쇠락하고 동부의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업과 서부의 실리콘밸리에 모인 첨단산업이 대체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르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한 미국인은 부를 축적했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던 고졸 이하 백인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집까지 빼앗겼다. ‘허리케인’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잃어버린 몰락한 중산층을 대상으로 이민자, 워싱턴 기득권층, 한국을 비롯한 부유한 동맹국, 그리고 중국 탓을 하면서 승리했다. 미국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내 삶은 무너지는 미국민 다수의 울분을 철저한 남 탓과 미국 우선주의로 대변한 것이다. 당황한 미국 주류는 트럼프의 등장을 포린어페어스 2019년 특집호를 통해 미국의 과다 군사 팽창, 경제 양극화, 미국 민주주의 쇠퇴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다행히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주창한 바이든이 등장했지만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상대적으로 쇠퇴한 미국을 복원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명료했다. 바이든은 취임사를 통해 “역사상 지금 미국이 처해 있는 시기보다 더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면서 “미국 민주주의를 복원해 힘의 본보기가 아닌 본보기의 힘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기능 장애를 보이는 미국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무너진 중산층을 복구하는 ‘중산층을 위한 대외정책’을 핵심 기조로 제시했다. 미국산 제품 구매를 우선하고,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하며, 중국을 겨냥한 공정무역과 공급망 재편을 통해 미국 산업을 일으켜 튼튼한 중산층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안정된 중산층이 존재할 때 미국이 세계 정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했다”고 역설했다. 부연하면 당분간 미 중산층과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처를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이를 통해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다시금 미국이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표출된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경제 우선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바이든을 적극 지지했던 인사들조차 “트럼프 대외정책을 일반화한다”(파리드 자카리아), “트럼프와 차이가 없다”(리처드 하스)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도 바이든을 포함한 향후 미국의 어떤 지도부도 현 방향을 급격히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같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복원하든지, 트럼피즘처럼 철저히 미국 이익만 추구하든지 현 상황에서 미국은 다수 유권자인 자국 노동자와 중산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표방했던 전통 원칙인 자유무역이 수정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미국이 가는 길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앞으로 예고된 많은 조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는 미국을 추동해야 한다. 아무리 목표가 중요하더라도 과정이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된다. 미국이 자유무역, 열린 다자주의, 법치를 중시하는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온전히 존중하도록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