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입장 빠진 ICC 결정문, ‘론스타 판정’ 역공 근거되나

입력 2022-09-02 04:06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한국 정부의 론스타 배상액을 2억1650만 달러(약 2800억원)로 결정하면서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한 배경으로 과거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 판정이 지목되고 있다. 당시 국제상사중재 기관인 ICC는 하나금융을 상대로 한 론스타의 손해배상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도, ‘한국 금융 당국이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를 요구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결과가 나오면서 하나금융은 승소할 수 있었지만, 이는 이번 론스타 배상 결정에서 정부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 격이 된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 측은 3년 전 ICC 판정 내용이 이번 론스타 선고의 주요 증거로 사용됐다면 오히려 이후 판정 취소 신청의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하나금융이 론스타에 전달한 금융위원회의 태도 관련 주장은 금융위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 측은 2019년 ICC의 결정문이 이번 론스타 선고의 증거로 쓰였다면, 이를 판정 취소 신청의 주요 사유로 제기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당시 ICC는 외환은행 매각가 인하에 금융위의 압박이 있었다는 대목을 인정했는데, 이와 관련해 금융위가 소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절차적 권리’가 침해됐다는 취지다. 한국 정부가 당사자가 아니었던 ICC 중재 내용이 지난 31일 론스타 배상 결과에 영향을 끼친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낼 것으로 보인다.

당시 ICC 결정문을 보면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금융 당국의 개입을 시사하면서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증언 등이 반영됐다. 이는 결국 이번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넘기는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승인을 지연시켜 손해를 보았다는 론스타의 주장 인용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ICC 결과가 정부의 ISD에 불리한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금융 당국은 “ICC와 ISD는 당사자 및 근거법이 다른 별개의 사건” “정부는 ICC 사건에서 의견 개진이나 증거 제출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등의 논리로 일축했었다.

지난 3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약 2800억원과 지연손해금(이자) 185억원 가량을 배상해야 한다는 ICSID의 판정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초 예상됐던 조 단위의 배상금보다는 적은 수준이지만, 이를 계기로 관치금융의 폐해를 반성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법령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는 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추진하는 등 배상 책임을 ‘0’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론스타 사건에선 처음부터 우리 정부가 전부 승소해야 한다는 게 관계 부처들의 일치된 생각이었다”고 했다. 다만 ISD는 단심제 취지에 따라 한정된 사유에서만 판정 취소 신청이 가능해 신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가 발령한 절차명령 제5호에 따라 판정문은 쌍방 당사자(정부·론스타) 동의가 없을 경우 대외 공개가 불가능하다”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신속히 판정문을 공개하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