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 무역수지가 통계 작성 이후 66년 만에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꺾였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선 수출이 늘어야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 폭이 오히려 커지면서 ‘수출 강국’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누적된 무역 적자가 원화 가치 하락과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을 더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르고 증시는 요동치는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한국의 무역수지가 94억7000만 달러(약 12조827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이는 1956년 무역수지 집계 이래 가장 큰 적자 규모다. 적자 폭이 48억500만 달러였던 전달보다 배 가까이 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웃도는 현상이 1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의 수입액은 661억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28.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출은 566억7000만 달러로 6.6% 증가에 그쳤다.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지난달 107억8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7.8% 감소하며 2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수출 감소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도 지난달 131억2600만 달러로 5.4% 줄었다. 대중 무역수지는 5억4000만 달러 적자로, 5월 이후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 무역적자가 4개월 연속된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수출이 꺾이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벌써 올겨울 ‘가스대란’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이 이어지면 무역수지 적자 폭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6%대’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경기는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우려에 환율과 증시도 발작을 일으키며 불안 요인을 더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17.3원 오른 1354.9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기록한 장중 연고점(1352.3원)을 하루 만에 갈아 치웠다. 장중 최고가(1355.1원) 기준으로는 2009년 4월 이후 13년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증시도 기관·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가 이어지며 급락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28%(56.44포인트) 내려간 2415.61에 장을 마쳤다. 이날 하루에만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882억원, 8871억원 순매도했다. 코스닥도 전날 대비 2.32%(18.72포인트) 떨어진 788.32에 마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김지훈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