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똑똑한 소비자라도 순식간에 ‘호구’가 될 수 있다면 믿겠는가. 한 가지 조건이 갖춰진다면 가능하다. 대체재가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똑똑한 당신이라도 호구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시장의 원리는 참 잔인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킨이 그랬다. 국민 간식이라더니 어떤 제품은 3만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가격이 올랐다. 치킨 가격 자체도 올랐지만 배달비가 만만찮게 오르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가뜩이나 고물가로 힘든 상황인데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치킨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공감도가 높을 수 있겠다.
다행히 치킨은 프랜차이즈 업체와 맞붙을 만한 대항마가 등장했다. 유통업체인 홈플러스는 마리당 6990원에 판매하는 ‘당당치킨’을 선보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된다. 배달의 편리성을 버리고 치킨을 사기 위해 시간 맞춰 줄을 서는 정성을 들이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 전문점처럼 다양한 메뉴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필요하다.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소비자 호응도가 높다. 돈 많으면 3만원 주고 치킨을 시키면 된다. 그게 부담스럽다면 이렇게 줄을 서는 식으로 가성비를 찾을 수 있겠다.
이 기획의 성공이 후속작을 불렀다는 점을 봐도 대체재 효과는 확실히 시장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값 수준의 피자가 나오고 반값 초밥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탕수육도 나왔다고 한다. 아직 맛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만간 탕수육을 기다리는 줄에 서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그런데 유독 한국 택시만큼은 이런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유동 인구가 급증했지만 외식을 즐긴 뒤 택시를 타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일반 택시는커녕 카카오 택시도 잡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몰릴 시간 때는 웃돈을 얼마나 얹어줘야 택시가 잡힐지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대체재가 없다 보니 생긴 일이다.
‘대중교통을 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건 서울시 등 대도시에서나 할 수 있을 법한 말이다. 정부세종청사가 들어서 있는 세종시만 봐도 대중교통은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차라리 걷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세종시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 ‘셔클’이라는 수요응답형 버스가 있기는 하다. 수요응답형 버스란 모바일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면 비슷한 경로인 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버스를 말한다. 편리한 시스템이지만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정부 부처가 있는 곳마저도 이런 상황인데 인구가 더 적고 공공교통 체계가 열악한 곳은 어떨까 싶다.
원인은 알고 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택시 운전을 하는 기사분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법인택시를 몰아야 하는 분들이 박봉에 손님까지 없으니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능히 예상된다. 이렇게 업계를 떠났던 분들이 다시 돌아왔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한국에서 ‘우버’와 같은 서비스를 사실상 사장시키면서 대체재를 찾을 길이 막막해졌다. 택시기사분들의 반발이 컸고 정부와 당시 여당이 이를 수용한 결과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절대다수인 국민 대부분이 웃돈을 줘야만 택시를 타는 호구가 됐다.
우버나 ‘타다’를 살리는 정책을 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소비자 선택지를 넓힐 뿐만 아니라 직업 이전의 자유까지도 확보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면서 배달 시장이 위축됐다. 배달 라이더들의 벌이도 줄었다. 이들이 지금 기사가 부족한 택시 시장에 플랫폼 노동자로 뛰어들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이 기회를 정부가 직권으로 막아버렸다는 인식이 지워지지 않는다.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이익단체는 ‘그게 왜 우리여야 하냐’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이익단체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자성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서비스업이 자성조차 없이 소비자를 호구로 만드는, 대체재가 없는 시장은 역동성을 가지기 힘들다. 최소한 정부가 이를 주도하는 ‘공범’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