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화를 잘 내는 아버지는 어머니 폭행까지 일삼았고 가족들은 늘 주눅들어 살았다. 불안과 열등감 속에서도 7살부터 아버지 몰래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노래의 재능을 알아 본 성악전공의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성악공부를 권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대표로 출전하고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며 지긋지긋 하던 집을 떠났다. 친구들 중에 가장 좋은 대학이란 자부심도 컸고 노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과내에서 실력이 뚜렷이 부각되며 결혼을 비롯한 내 모든 삶은 노래에 맞추어졌다.
늦게 졸업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시립합창단 시험에 응시해 성악전공 소프라노 200여 명 중 1차에서 1등을 하며 합창단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솔로도 맡았다. 그러나 그것조차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더 높고, 더 넓은 무대의 꿈을 안고 남편의 졸업과 동시에 미국유학을 떠났다. 남편에게 먼저 공부를 양보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좀 자라며 시간적 여유가 생겨 본격적 공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공부하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남편 학비와 유학 자금을 내가 번 돈과 친정의 도움으로 감당해 왔는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그 말에 내 인생 전체가 무너졌다.
박사공부를 마친 남편은 혼자 훌쩍 한국으로 떠났다. 마음은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남아 공부를 시작했다. 절망과 분노를 누르며 아이들과 텅빈 교회에서 밤을 새며 하나님께 매달리던 어느 새벽, ‘땅 끝까지 증인이 되려면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를 지나야 한다.’는 말씀을 받았다. 그때 사마리아가 한국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박사 학위 공부를 접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이태리에 가서 잠깐 공부를 했지만 내가 원하던 학위도 아닌데다 한국의 현실은 나를 더 고통으로 몰고 갔다. 무대에 설 기회도 거의 오지 않고, 상대가 되지 않던 친구와 후배들이 큰 무대나 대학 강단에 서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괜찮아! 나는 예수님이 있잖아!’ 그러나 예수님은 내 눈물을 닦아 주지 못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에 합창단에서 늘 기쁘게 지내던 친구를 찾아 춘천으로 떠났다. 따뜻이 맞아 준 친구는 예수님이 답이라며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다.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고 했다.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한마음교회 토요찬양 예배에 참가했다. 처음 듣는 찬양이었다. 힘겨워서 좌절하고, 괴로워서 슬퍼하는 것은 딱 내 얘기였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고민 없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내 괴로움과 좌절의 이유가 왜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요한복음 16장 9절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에 대한 말씀이 반복해 선포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 되어 살아왔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내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간절하게 엎드리던 어느 날, ‘미령아!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이 마음에 울렸다.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굳어지며 그동안 쌓아온 내 신앙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찬양 가사처럼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내 열심과 정성으로 믿음을 포장해 하나님 앞에 내 놓으며 무대의 환호에 흐뭇해하고, 그것이 사라지면 공허함에 빠졌다. 노래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고, 신앙이 흔들리고, 삶 전체가 흔들렸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이 주신 확실한 증거였다. 그 증거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으며 진정한 주님의 사랑 속에 새 삶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욕심으로 불타던 노래의 우상부터 깨뜨려 주셨다. 내 입에서 나온 노래와 찬양이, 남들에게 보이려는 한갓 욕심이었음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니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이 가슴에서 흘러 나왔다. 아이들에게 노래 레슨을 할 때는 음식을 해주며 복음도 함께 전했고, 친정아버지께 장문의 글로 미워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드렸다. 남편이 입원했을 때, 옆 자리에 호흡기를 달고 힘들어 하는 73세의 할아버지를 위해 공동체에 기도를 부탁하고 복음을 전했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며 영접기도도 따라했다. 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리고 사랑한다며 천국에서 꼭 만나자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어느 새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양이 내 삶이 되어 있었다. 교회에 찬양의 은사가 있는 자매들과 중창단을 만들어 병원, 신우회, 서울 도심거리 등에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카페에서 즉석 찬양 콘서트도 가끔 열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잠시 충격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꼭 붙들고 계시니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 바라본다. 오늘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오직 푯대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김미령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