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부터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했어요. 뭘 만지면 전부 사라지고, 깨지고, 고장나고…. 그거야말로 타고난 거죠. 모든 걸 망가뜨리는 사람.”
소설가 강치우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지우는 사람, ‘딜리터’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천지창조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손 대는 모든 것들이 망가져도 대부분의 딜리터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모른다. 강치우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랑하는 여자 소하윤을 지웠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을 고통스러워하던 소하윤을 다른 차원의 세계, 다른 레이어(층)로 보냈다.
조이수는 현실과 다른 레이어의 세계를 보는 능력을 가진 ‘픽토르’다. 강치우는 소하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조이수를 찾아간다. 조이수는 강치우와 함께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려 한다. 실종자를 찾는 모임 ‘미싱 앤드 파인딩’의 대표 배수연은 소하윤 실종의 배후로 강치우를 의심하며 그의 뒤를 쫓는다. 대기업 오너 함훈은 사업에 방해만 되는 골칫덩어리 아들을 조용히 제거하기 위해 강치우를 찾는다.
소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사람들,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상은 여러 겹의 레이어로 이뤄져있다는 세계관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해 보이지만 소설 속에선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 공감하기 쉬운 소재를 가지고 작품은 판타지와 미스테리를 오간다.
‘딜리터’는 모두 꾸며낸 것 같으면서 모두 정말일 것 같은 이야기다. 사는 게 버거워서,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사람들은 한 번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고 있는 현실의 나는 어떤 레이어에 있는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김중혁은 작가의 말에서 “현실이 하나의 레이어라면, 한 권의 소설 역시 하나의 레이어 같다. 내가 읽은 소설이 무수히 많은 레이어로 쌓였고, 내가 만든 이야기를 그 사이에 슬쩍 끼워 넣었다”며 “시간이 한참 흐르면 현실 레이어와 소설 레이어를 구분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CJ ENM이 진행하는 ‘언톨드 오리지널스(Untold Originals)’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시리즈다. 프로젝트명은 ‘당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CJ ENM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의미한다. 블러썸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기획한 지적재산(IP)을 소설로 선보인 후 영상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소설은 출간 전 가제본을 통해 독자들을 먼저 만났다. 가제본에는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에 대한 정보 없이, 오로지 작품의 제목과 출판사 이름만 적혀있었다. 작가의 이름을 통해 독자들이 작품을 섣불리 예상하지 못하도록 하고, 순수한 이야기의 재미만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