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는 공론은 허상일 뿐.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20대 용접공이던 천현우(32)는 그날 일기장을 샀다. 그리고 “점심밥을 후루륵 휘몰아 먹고 공장 앞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 있는 커다란 바위에 앉아 “어젯밤부터 오늘 낮까지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
그렇게 쓰인 글들이 책으로 묶여 우리 앞에 도착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는 천현우라는 한 청년이 지방도시 마산에서 중소기업 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10년여의 시간을 보여준다. 실업계고 출신, 전문대 졸업자의 20대에 대한 솔직한 회고록이자 지방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요즘 젊은이들이 왜 중소기업을 피하는지, 왜 공장에 안 가는지 알게 된다. 천현우는 수많은 공장들을 옮겨 다니며 일했다.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LG 하청을 다니다 나오고, 현대차 전장품을 만드는 업체에 갔다고 또 나오는, 일자리 난민으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공장은 다 달랐지만 출근 첫 날 모습은 어디서나 비슷했다. “출근 첫 날. 근로 계약서를 쓰기도 전에 작업복과 안전화부터 받았다… 사장님은 작업장에 날 데려다 놓더니 ‘다 할 줄 알제?’라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첫날부터 세 시간 잔업을 시켰다. 사장님은 ‘우리 회사는 토요일도 나와야 한다’라는 덧붙임도 잊지 않으셨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산재를 지켜봤다. 본인의 경험담도 있다. “팔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 억지로 참다가 그대로 수지를 바닥에 쏟았다. 재빨리 통을 기울였지만 섭씨 400도 온장고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수지가 발등에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사장은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그 병원이란 게 상가에 있는 작은 동네의원. 의사는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만 맞혔다. “사장은 택시비 2만원을 쥐어주고 선심 쓰듯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살벌한 노동강도, 최저 임금에서 꿈쩍 않는 시급,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경력, 한번 당하면 생계와 생명을 위협받는 산재, 공장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귀족 정직원과 천민 하청 직원.” 천현우가 전하는 공장 노동의 현실이다. “다달이 200만원 월급에 여덟 시간 일하면 충분한데, 그조차 어찌나 이리 힘겨울까.” 어느 날의 혼잣말에 청년 노동자들의 삶이 압축돼 있다.
임금이나 노동시간, 작업환경, 산재 같은 것보다 젊은이들에게 더 큰 문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천현우의 친구인 여성 청년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니도 알잖아. 라인 작업 힘들고 지리해서 못하는 거 아이다 아이가. 미래가 없는데 우얄 끼고.”
천현우 작가의 등장으로 “공장 안에서 지겹고 식상해질 때까지 나눴던 말” “밖에선 부끄러워서 감히 꺼내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SNS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세상이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천현우의 글은 지금 청년 담론이 결여하고 있는 존재들을 가시화한다. 고졸자들, 지방의 청년들, 공장의 청년들…. 그러면서 능력주의와 공정을 다시 묻는다.
천현우는 올해 용접봉을 놓고 마산을 떠나 서울의 미디어스타트업에서 일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용접공이다. 억대 연봉과 최저 시급, SKY와 고졸, 서울과 지방, 기성세대와 청년 사이를 글로 용접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