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감정에 기댄 ‘먹튀’ 언급, 론스타 도와준 셈

입력 2022-09-01 04:08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결론이 31일 제시되자 금액의 다과를 놓고 각계 평가는 엇갈렸다. 다만 승패를 따지기보다는 국제적 수준에 맞는 제도 개선 등 방책을 고민하는 게 보다 발전적이라는 고언이 많다. 이번 ISD에 관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백서를 만들고 모두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론스타와의 ISD 전 과정을 복기해 대비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병덕 미국변호사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인정한 ‘금융당국의 매각 승인 지연’과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 감정에 기대 행동했고, 증거를 스스로 마련해줬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서 ‘먹튀’가 언급되거나 “매매대금을 낮추기 전엔 허락할 수 없다”는 성토가 공공연히 제기됐던 점은 전략적으로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론을 반영한 비판들이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의 고의를 입증해야 할 론스타를 도와준 셈도 됐다고, 임 변호사는 진단했다.

근본적으로 투자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민간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자본의 횡포를 정당하게 제어할 수 있는 협정상의 조항을 도입하면서도, 정당하게 투자하는 기업의 결정권은 국제적 수준에 입각해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령과 정책을 국제 기준에 맞춰 보다 명쾌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투자조약 중재의 현황을 점검하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민간기구인 ISD가 정부의 결정을 판단하는 제도 자체가 주권 침해라는 주장인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판정 승패를 논하는 것은 부차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설픈 정책 판단은 향후 상상할 수 없는 법적 분쟁을 만들 수 있다”며 “즉흥적, 단선적인 정책 결정은 절대 지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판정”이라고 평했다. 곽경직 변호사는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라 괜찮다’는 식의 판단은 판정을 받아들이는 가장 안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