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정보라 “11년 강의… 퇴직금 한 푼 못받아”

입력 2022-09-01 04:03
단편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3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편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연세대를 상대로 법정 싸움에 나섰다. 시간강사로 11년간 강단에 서고도 그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 작가는 31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 ‘퇴직금 및 수당 청구 소송’ 첫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저는 연세대로부터 퇴직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들에게 퇴직금·수당을 주지 않는 건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2010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11년간 연세대 강단에 섰다.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 러시아문화체험 등의 강의를 맡았다.

강사 계약이 종료된 이후 대학 측은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정 작가가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학교 측은 “2019년 2학기 이후 강의분만 지급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강사에게 대학 교원 지위를 부여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강사법’이 2019년 8월 시행됐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등에 따르면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에겐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학교 측은 이를 근거로 정 작가의 순수 강의시간이 기준에 미치지 않았으니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이 같은 대학 논리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중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1주에 15시간을 강의하는 강사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강단에 서는 행위만을 노동으로 간주하는 셈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 작가는 3학점짜리 러시아 문학 강의를 한 학기 동안 진행하기 위해 순수 강의시간 37.5시간 외에도 수업 준비에 210시간, 중간·기말고사 출제 및 학사행정 등을 위해 51시간 정도를 들였다고 주장했다.

정 작가는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당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