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9월 위기설’이 돌았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세계적 렌터카업체 허츠 등 미국 기업들의 줄도산 공포가 확산됐을 때다. 당시 한국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 규모가 사상 최초로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었다. 그때부터 대출 만기 연장 등 정부의 금융지원이 시작됐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과 기업의 빚 상환 기일을 뒤로 미뤄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의 금융지원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면서 부실 리스크는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00조원에 육박한다.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19년 말에 비해 300조원가량이나 늘었다. 이들 중 금융기관 2곳 이상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4명 중 1명꼴이다. 장기 불황에 이들이 빚을 갚을 능력은 불행하게도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됐다.
2년 넘게 이어진 자영업자에 대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등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는 9월 말 종료된다. 대신 정부는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중 최대 40만명의 채무를 조정해주는 새출발기금을 다음 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30조원을 마련해 최대 90% 원금을 탕감해주는 방안이 담기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정부 내에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 동안 시중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 자영업자 대출이 크게 늘었고, 이 중 상당수는 상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은 모럴 해저드가 문제가 아니라 이 부분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걱정했다.
이 문제를 포함해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금리 상승세가 가파르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연 2.50%로 지난 1년 새 2% 포인트 이상 뛰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달 26일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참석하는 ‘잭슨홀 미팅’에서 “지금은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멈출 때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파월 의장 한마디에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점을 지나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관측이 무색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혼돈에 빠졌다. 우리 시장 역시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과 증시 급락 사태를 겪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라는 3중고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자영업자 대출 부실 리스크가 조만간 함께 불거지는 복합 위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가 손을 쓸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연일 “정부를 믿어 달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충분치 않다. 시장 예상대로 연준이 이달 중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0.75% 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경우 한·미 금리 역전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환율 시장을 또다시 자극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환율 상승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금리와 환율 상승 현상에 물가까지 잡히지 않으면 투자와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곧 한국 경제의 ‘9월 위기’가 될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탄했듯이 국가 재정도 파탄 날 우려가 크다. 2008년 때처럼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 1997년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위기는 반복되고 있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칼럼을 통해 멋진 해법을 제시하고 싶지만 능력 밖이다. 확실한 건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한국 경제의 앞날을 함께 고민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팀의 슬기로운 대처를 기대해 본다.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