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도전·기업가 정신’… 재계, 거센 창업주 띄우기 바람

입력 2022-09-01 04:03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임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복권 이후 첫 현장 경영에 나선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고 이병철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언급하며 기술 초격차를 강조했다. 삼성전자 제공

재계에 창업주 마케팅 바람이 거세다. 기업들은 ‘초심’ ‘도전’ ‘기업가 정신’을 외치며 창업주를 소환한다. 기업 총수가 직접 선대 회장을 언급하기도 한다. 재계에선 글로벌 경기침체 흐름에서 위기 탈출의 수단으로 ‘창업주 카드’를 사용한다고 분석한다. 기업의 ‘창업주 띄우기’ 이면에는 기업가 정신이 가장 높았던 창업주 세대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지금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가 자리한다고 해석한다.

지난 19일에 복권 이후 첫 현장 경영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 반도체사업장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40년 전 절박했던 선대 회장의 심정을 되새기며 그때 마음으로 기술 역량을 더욱 더 강화하자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삼성전자는 기공식 현장에 대형 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설치하고, 선대 회장이 생전에 말했던 4개 문장을 띄우기도 했다. 주위 반대에도 반도체 사업 진출계획을 발표했던 이른바 ‘도쿄 선언’ 직후에 내놓은 발언 중 일부였다. 이 부회장은 선대 회장의 어록을 꺼내며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말했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3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삼성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DS(반도체) 부문이다. (지난 유럽 출장 때도 언급했지만) 가장 중요한 게 처음도 기술, 마지막도 기술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며 “기술을 강조한 게 이건희 회장이었고, 더 올라가면 이병철 회장이었다. 선대 회장의 정신을 이어갈 테니 다시 같이 해보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다만 정 교수는 “선대 회장 얘기를 꺼낸다는 건, 어떻게 보면 그만큼 현재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SK그룹은 지난 26일 최종현 선대 회장 24주기를 맞아 50년간 이어진 그룹의 ESG 경영 사례를 소개했다. 최 선대 회장은 최종건 SK 창업주의 동생이자 최태원 현 회장의 부친이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인 SK이노베이션도 기업가정신학회의 분석을 인용해 “최 선대회장이 강조한 SK이노베이션 혁신 DNA가 최 회장을 거쳐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에 신격호 창업주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창업주 정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1일 신격호 기념관 개관식에서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는 길에 신 명예회장께서 몸소 실천하신 도전과 열정의 DNA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그 정신을 깊이 새기며 모두의 의지를 모아 미래의 롯데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이 가장 높았던 창업주에 주목하는 건 일종의 후광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경영자로서 기업 전체 방향성에 관해 얘기할 때 창업주 정신은 사업 연속성과 결속력 측면에서 좋은 소재가 된다”고 분석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