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0.73% 포인트 차로 대권을 내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패배 후 다섯 달 만에 169석 거대 야당의 사령탑에 올랐다. 이 대표는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지게 됐다. 대선 패배 후 초고속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권까지 거머쥔 이 대표의 행보가 2년 뒤 총선과 5년 뒤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관심이 쏠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된 8명의 경력을 보면 절반 이상인 5명이 당권을 토대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당권을 쥐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권이 대권 가도에 유리한 발판임은 많은 사례로 입증된다.
당대표 거쳐 대통령 된 케이스 많아
노태우·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당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총재를 지냈다. 특히 이들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당 총재를 겸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정의당 총재, YS는 민주자유당 총재, DJ는 새천년민주당 총재로서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여당과 국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관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정·당청 분리 선언을 기점으로 종식됐다. 당권과 대권이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된 것인데, 그렇다고 이후부터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당에 미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거쳤다. 박 전 대통령은 직전 대선 경선에서, 문 전 대통령은 직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당권을 잡았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다음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에게 진 뒤 2011년 비대위원장에 올라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2012년 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됐다. 이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사단’의 탈당에 따른 분당과 호남의 비토 속에 당권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넘겨줘야 했지만, 총선 승리를 토대로 2017년 대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당권이 대권의 필요조건은 아냐
역대 모든 대통령이 당대표를 역임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MB는 당대표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 5월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원조차 거치지 않고 대권으로 직행했다.
당권이 대선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당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정치 현안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무능함이 부각된다면 오히려 대권 주자로서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대선에서 DJ에게 석패한 뒤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선출된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 ‘중진 물갈이’를 시도했는데, 이로 인해 당내 갈등이 심화됐다. 이어 2002년 대선에선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이 불거진 데다 ‘이인제 효과’까지 겹쳐서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며 단숨에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역시 당권이 독이 된 경우다. 이 전 대표는 2020년 21대 총선 때 서울 종로에서 당선된 직후 4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추문으로 인해 치르게 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무리하게 후보를 낸 것과 ‘MB 사면’ 발언,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타격을 입었다. 결국 그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노무현정부 때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지낸 뒤 대선에서 MB에게 참패했던 정동영 전 의원도 비슷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대권과 당권이 밀접한 관계에 있고, 당권을 확보하는 것이 대권 경쟁에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과거에는 당권을 쥐면 오히려 대권에 불리한 경향이 있었지만, 현재는 당권을 쥐는 것이 확실히 대권 가도에 유리하다”며 “당대표는 국민에게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쌓을 수 있고 정책을 통해 본인의 역량도 드러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권과 대권의 밀접한 연관성은 고착화된 양당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대권을 나눠 가져온 두 정당 중 한 곳의 대표가 되면 다음 대선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기반을 닦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당대표가 되는 일은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든 안 되든, 당대표가 되면 일단 대권 획득 가능성의 50%는 손에 쥐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표의 당권 획득도 5년 후 대선 준비에 긍정적이라면서도 강성 팬덤에 휘둘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보다는 일반 당원의 목소리, 나아가 국민 전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냉철한 인식이 유지돼야 대선까지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