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인 명의로 국내에 유령회사 7곳을 차렸다. 그는 이 회사들이 화장품 수입사인 것처럼 송장을 꾸민 뒤 수입 대금 명목으로 돈을 해외로 보냈다. 이 돈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들이는 데 쓰였다. A씨는 매수한 가상자산을 개인 전자지갑으로 옮겨 시세가 더 높은 국내 거래소에서 팔았다. 사실상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가상자산 특성을 악용한 것이다. 이 과정을 수백 차례 반복해 A씨는 시세차익 50억원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30일 ‘가상자산 관련 불법 외환거래 기획조사’를 통해 2조715억원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서울세관은 지난 2월부터 세관 자체 정보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외환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였다. 기획조사로 적발된 인원은 16명이었다. 16명 중 2명은 검찰에 넘겨졌다. 7명에게는 과태료 110억원이 부과됐다. 나머지 7명에 대해선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 적발된 불법거래 대부분은 국내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범죄였다. 적발 유형별로는 A씨 사례처럼 무역대금으로 위장한 자금을 해외로 보내 가상자산을 사들인 뒤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시세차익을 챙긴 경우가 1조3040억원 규모로 가장 많았다.
해외에서 매수한 가상자산을 국내로 이전시켜 매도한 뒤 특정인에게 자금을 지급하는 일명 ‘환치기’ 적발 규모는 3188억원이었다. 환치기 범죄는 해외에 있는 공범이 국내 송금을 원하는 의뢰인들로부터 현지 화폐를 받아 해외에서 가상자산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가상자산을 국내에서 무등록 환전소를 운영하는 B씨의 전자지갑으로 이체하면 B씨는 국내 거래소에서 자산을 매도해 국내 수취인들에게 계좌이체 또는 현금으로 전달하는 식이었다.
‘불법 송금 대행’ 유형도 3800억원 규모가 적발됐다. 이는 해외에서 가상자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자금을 받아 무역 대금이라고 속여 은행을 통한 송금을 대행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수법이다. 해외로 출국해 현지에서 직접 외화를 인출하고 가상자산을 매수한 불법 인출 유형도 있었다.
국내 은행을 거쳐 해외로 거액이 송금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는 사례도 포함됐다. 최근 관세청은 금융감독원에서 23개 업체의 외환거래 정보를 받아 전담 수사팀을 꾸린 상태다. 이민근 서울세관 조사2국장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