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담배꽁초… 국민은행 강도살인 해결 단초 됐다

입력 2022-08-31 04:06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의 정체를 21년 만에 밝혀낼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7년 전 한 불법오락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담배꽁초의 DNA였다. 경찰은 사건 당시 확보한 용의자의 마스크 및 손수건과 불법오락실의 담배꽁초 DNA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뒤 수사 대상을 무려 1만5000여명까지 늘려 조사를 벌인 끝에 범인들을 붙잡았다.

대전경찰청은 30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사건 피의자 이승만(52)과 이정학(51)의 신원을 공개했다. 경찰은 “신상 공개로 인한 피해의 중대성, 공공의 이익 등이 인정돼 피의자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범행 당시 단순히 날치기 등을 하려던 피의자들은 경찰에게 권총을 빼앗은 뒤 돌변해 범행 방향을 바꿨다. 이들은 2001년 10월 15일 새벽 대전 대덕구의 한 골목길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훔친 차량으로 들이받았다. 의식을 잃은 경찰관에게서 권총을 훔친 뒤 600여m 떨어진 길가에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

한 달 반 뒤인 12월 1일 경기도 수원에서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를 다시 훔친 이들은 이번엔 국민은행 충청영업본부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다수의 현금을 인출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날치기 등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은행 주변에 CCTV가 없고, 현금 호송차량이 출입하는 것을 보고는 호송차량의 현금을 노리는 것으로 범행 방향을 바꿨다.

무려 21년간 미궁 속에 빠져 있던 사건의 실마리를 푼 것은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수사였다. 피의자들이 범행에 사용하고 버린 차량 내부에서 마스크와 손수건을 발견한 경찰은 각 유류품에서 유전자를 검출했다. 하지만 당시의 유전자 분석기술로는 제대로 된 DNA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경찰은 2015년 충북의 한 불법오락실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국민은행 사건 당시 마스크 등의 DNA와 동일한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2017년 10월 받아들었다. 오락실 종업원 또는 출입자가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오락실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인원 1만5000여명을 수사대상으로 놓고 탐문조사를 시작했다.

수사대상 한 명 한 명과 범행과의 연관성을 5년 가까이 확인하던 경찰은 지난 3월쯤 이정학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이정학의 과거 행적 확인, 주변인 조사 등을 진행하며 끈질긴 추적을 벌인 끝에 지난 25일 그를 검거했다. 이정학으로부터 이승만과 함께 범행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해 이승만도 긴급체포했다. 사건 발생 7553일 만의 쾌거였다.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기록만 15만 쪽에 달한다”며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와 대전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 운영, DNA 과학수사 기법 발전, 형사들의 끈질긴 집념 등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21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