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공약·표심에 초점… 청년·농민 웃고, 소외층 울고

입력 2022-08-31 00:02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3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초점은 공약 이행과 표심 잡기에 맞춰졌다. 군 장병 등 청년과 농민 대상 예산 지출이 급격히 늘었다. 반지하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층 대상 예산과 만 0~1세 자녀를 둔 부모에게 지급하는 예산도 껑충 뛰었다. 반도체와 원전, 세계 공급망 재편 대응 강화에도 조 단위 예산이 투입된다. 반면 장애인이나 보육원 자립 청년 지원 예산 증가 폭은 미미했다.

30일 정부 예산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올해 82만원인 병장 월급을 사회 진출 지원금을 포함해 130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병장 월급은 매년 큰 폭으로 올라 2025년에는 205만원이 된다. 이에 따라 올해 2조3000억원인 사병 인건비 예산은 2023년 2조8000억으로 1년 동안에만 5000억원 증가한다. 다만 올해 하사 계급 부사관 기본급은 171만원이어서 사병과 직업군인 사이 역차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20만 농민 민심을 고려해 농업직불금을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직불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실경작자 56만명을 구제하겠다며 3000억원(올해 2조4000억원→2023년 2조7000억원)을 추가 편성했다. 영세 어가 대상 수산직불금(500억원)과 어촌 신활력 증진사업(400억원)도 새로 만들었다.

반지하 등 거주자의 이사비 지원 예산 3000억원도 새로 편성했다. 이를 포함한 주거안전망 예산은 9조9000억원에서 11조8000억원으로 늘렸다. 도림천·강남·광화문 등 상습 침수 지역에는 총사업비 9000억원을 들여 대심도 빗물저류터널을 짓는다.


각종 복지 예산도 혜택을 키웠다. 월 30만원 영아수당은 70만원 상당의 부모 급여로 확대했다. 만 0세 양육 가구는 70만원, 1세 가구는 35만원을 각각 받는다. 2024년에는 지급액이 만 0세 가구 100만원, 1세 가구 50만원으로 확대된다. 기저귀(월 8만원), 분유(월 10만원) 등 바우처 지원액을 인상했고 한부모 양육비(월 20만원) 지원 기준도 중위 소득 52% 이하에서 60% 이하로 확대했다. 필수 생계비 경감을 돕는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발행액을 올해 600억원에서 2023년 17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키웠다.

공약과 국정과제 이행에도 예산 비중을 높였다. 먼저 반도체 경쟁력 강화 예산을 7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렸다. 반도체 인력 양성 예산이 20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증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등 기술 개발에도 4000억원을 투입한다.


일감 창출과 중장기 기술 개발, 인프라 확대 등을 포함한 원자력 생태계 강화 예산은 5000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확대 편성했다.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국산화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등 세계 공급망 재편 대응 예산을 2조7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큰 폭 늘렸다.

반면 소외층 지원 확대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우선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을 2500억원 늘리는 데 그쳤다. 이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주장하며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 증가 요구분(1조2000억원) 대비 1조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어진 예산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라고 말했다.


5년간 월 30만원씩 지급되는 보육원 자립 청년 지원금은 월 40만원으로 찔끔 인상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육원 자립 청년 월평균 소득은 127만원으로 또래 평균(233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생활비·주거비 등으로 1인 평균 6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지원금 월 10만원 인상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욱 권민지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