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총수도… ‘MZ 탐구생활’

입력 2022-09-03 04:02 수정 2022-09-0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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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형의 꼰대가 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남 얘기를 듣지 않는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신(新) 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했던 말이다. 최 회장은 ‘꼰대력 테스트’를 언급했다. 그는 “기업들도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이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면서 과거만 얘기하며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꼰대로 낙인찍힐 것”이라며 소통을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최 회장의 ‘꼰대론’을 50초 분량으로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 편집해 유튜브 채널에 띄웠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특히 MZ세대 직장인들이 호응했다. ‘상사=꼰대’라는 공식이 일반화된 지금, 상사 중의 상사인 그룹 총수가 꼰대를 언급한 걸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최 회장처럼 ‘MZ력 키우기’에 나서는 기업 총수가 늘고 있다. MZ세대가 기업 구성원의 절반에 육박하면서 총수와 경영진은 ‘MZ세대와 일하는 법’을 찾아서라도 배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들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만들기에 적극적인 건 MZ세대의 영향이 크다. MZ세대를 담아낼 수 있는 조직문화 정립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전했다.

MZ세대 이해 없이는 기업의 미래 없다


8·15 광복절 사면 복권 후 현장경영을 이어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건 구내식당 방문이었다.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뒤 지난달 19일 첫 공식 일정으로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행사에 앞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의 구내식당을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를 방문했던 지난 24일에도 구내식당을 찾았다.

이 부회장이 ‘구내식당 식사’를 사장단에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뜻밖의 만남’은 MZ세대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만나거나 먼발치에서 보기도 힘든 그룹 총수를 어떤 사전예약도 조율도 없이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 구내식당이다. MZ세대 직원들은 “재드래곤 떴다”며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이 부회장은 식판을 들고 배식 순서를 기다렸고 음식을 직접 받아 식사했다. 임직원의 사진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MZ세대는 약 1700만명에 이른다. 한국 인구의 34%가량을 차지한다. 국내 주요 기업 임직원의 50% 정도가 MZ세대로 추산된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MZ세대 비중이 80%에 달하기도 한다. MZ세대를 이해하지 않고는 기업의 미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6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사옥의 대강당에서 열린 오은영 정신의학과 박사 초청 ‘마음 상담 토크 콘서트: 요즘, 우리’에 참여했다. 정 회장은 ‘세대 간 간극 해소 방법과 직장 내에서의 바람직한 소통 방식’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도 ‘MZ세대 알기’ ‘MZ세대와의 공존’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MZ세대는 가장 가까운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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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소비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MZ세대 직원들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MZ세대는 내부 직원과 외부 고객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MZ고객이 기업 안에 포진해 있는 것이다. 기업 총수들은 MZ세대와의 접점에서 ‘고객의 니즈’를 찾는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삼성전자의 경기도 수원사업장을 찾아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의 MZ세대 직원들로부터 내년에 출시할 전략제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부회장이 전략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해 경영진이 아닌 MZ세대 직원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기는 처음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25일 SK그룹의 대표적 지식경영 플랫폼 ‘이천포럼 2022’ 마무리 세션을 ‘회장과의 찐솔 대화’로 꾸몄다. 최 회장은 준비한 원고를 발표하는 ‘클로징 스피치’라는 형식에 변화를 줘서 임직원과의 양방향 토론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이천포럼은 모든 방안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여기서 나온 구성원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오는 10월 CEO 세미나에 반영되면, 결국 구성원들이 각 멤버사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MZ세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담은 제품을 출시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사례도 늘고 있다. LG전자의 무선 이동식 스크린 제품인 스탠바이미가 대표적이다. MZ세대가 개발 주축이 됐다고 한다.

MZ세대 마음 못 얻은 ESG는 실패


이제는 기업 경영에 있어 필수 요소로 자리를 잡은 ‘ESG 경영’에도 MZ세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떠올랐다. MZ세대는 기업이 표방하는 가치를 보고 구매하는 소비 성향을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 4월 발표한 ‘MZ세대가 바라보는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가운데 60% 이상이 ESG 실천 기업 제품을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MZ세대는 착한 기업에 열광한다. 최근 삼성이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의 숙원사업인 ‘신개념 화장실’(RT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해 난제 해결에 기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MZ세대는 ‘엄지 척’을 날렸다. 착한 기업에 열광하는 MZ세대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맛남의 광장’에서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연락을 받고 지역상권을 돕는 일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BS의 예능프로그램 ‘식자회담’에 나와 한식의 우수성을 소개한 일은 모두 기업의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이제는 영업이익 같은 재무적 수치로 기업의 가치가 좌우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이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