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기업 뒤통수친 美, 보조금 차별 바로잡으라

입력 2022-08-31 04:0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35분간 면담한 뒤 미국에 105억 달러를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문제가 양국 정부 간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기업 차원을 넘어 공식 외교통상 의제가 됐다. 한국 전기차가 차별당하게 된 상황의 부당성을 미국 측도 공감해 이렇게 합의됐다고 한다. 긍정적 소식이지만, 애초에 이런 일을 만든 미국 정부가 문제 해결에 더 적극 나서야 할 사안이다. 한국 기업은 뒤통수를 맞았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삼성 현대 SK LG 등이 잇따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공급망 재편을 원하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리했는데, 정작 그런 기업의 제품이 미국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경제 협력에 앞장선 기업을 거꾸로 차별하는 행태는 양국 관계를 안보동맹에서 경제안보동맹으로 확대한 한·미 정상회담 취지에도 배치된다. 미국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해법이 간단치 않다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이미 발효된 터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곧 중간선거 국면에 접어들어 입법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거 전에 개정되지 않으면 다음 의회가 구성돼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외교 총력전에 나서야 할 때다. 정부 실무 대표단이 워싱턴에 가 있고 통상교섭본부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외교부 2차관 등의 방미 계획이 잡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유엔총회 참석차 다음 달 뉴욕에 간다. 다양한 채널로 미 정부와 의회를 압박해 이 사태가 장기화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북미산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노골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내연기관을 대체할 미래 산업을 미국 기업이 주도하도록, 미국이 생산기지가 되도록 만들려 한다. 관세를 동원하던 무역장벽은 이제 생산지 차별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뒤바뀔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장기적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