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29일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원·달러 환율은 1350원을 돌파해 13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시는 2% 이상 떨어지며 한 달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1원 오른 1350.4원으로 마감했다. 환율이 1350원을 넘어선 것은 종가 기준 2009년 4월 28일(1356.8원) 이후 처음이다.
증시도 크게 출렁였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4.14포인트(2.18%) 내린 2426.89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지난달 27일(2415.53) 이후 최저치다. 코스닥지수는 22.56포인트(2.81%) 내린 779.89에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570억원, 5589억원을 순매도해 지수를 끌어내렸다.
금융시장이 흔들린 이유는 이른바 ‘파월 쇼크’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6일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연준이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 기준금리가 국내 금리를 크게 웃돌면 외국인 이탈, 원화 약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외환 당국은 파월 의장 발언의 파장을 최소화하려 구두 개입 의견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금융·외환·채권 시장 반응에 유의하는 한편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대응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시장에서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율 오름세를 저지할 만한 요인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고환율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약 1350원이 허물어지면 그다음 고점이 1400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시장에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 한국은행이 경기 위축 우려에도 긴축 고삐를 당겨야 할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도 물가 상승률이 5%대를 유지한다면 파월 의장의 최근 발언처럼 물가 안정을 우선시하는 통화정책 기간이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금융비용 증가로 소비·투자 등이 위축돼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