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업계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대응해 배터리 소재의 ‘탈(脫)중국’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을 대신할 수입처 찾기에 역량을 집중할 뿐 아니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추진해왔던 ‘국산화’에 힘을 싣고 나섰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IRA 발효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배터리 소재 업체들과 활발하게 손을 잡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산 소재를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IRA에는 전기차 배터리에 포함된 특정 광물이 ‘해외 우려 국가’(사실상 중국)에서 추출·제조되거나 재활용되는 경우 인센티브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재료 국산화 등의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산 비중이 크지만, 수입처 다변화를 전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자회사인 에스티엠과 에코프로비엠과의 합작사 에코프로이엠을 통해 국산 양극재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은 계열사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통해 전구체를 제조·가공한 뒤 양극재를 만들어 삼성SDI 등에 납품한다. 전구체는 양극재의 기초 원료다. 중국산 비중이 90% 이상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미국의 중국산 전구체 사용 제한에 대응해 현재 5만t 규모의 전구체 생산 능력을 2024년 20만t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소재의 국산화 비율을 계속해서 높이고 있다. 최근 3년간(2018~2020년) 국산화 비율은 소재 43%, 부품 72%, 장비 87%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국산화 비율이 처음으로 50%(구매액 기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스코케미칼에서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인조흑연 음극재 관련 성능평가 및 수요 파트너로 참여하기도 했다. 포스코케미칼은 천연흑연을 주요 소재로 음극재를 생산해왔다. 이차전지 회사들과 꾸준한 협력을 통해 인조흑연 음극재 국산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에 경북 포항에서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공장 1단계 준공식을 열고 시험 가동에 들어갔고, 현재 양산을 준비 중이다.
이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인조흑연은 천연흑연보다 장점이 많다. 하지만 생산기술 부족으로 그동안 전량 수입해왔다. 중국산 비중이 90%에 이른다. 포스코케미칼은 인조흑연의 국산화로 세계 시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미국에서 IRA가 발효되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배터리 회사로의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관측한다.
전해액과 분리막 소재의 국산화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전해액 제조업체인 엔켐은 미국에 전해액 공장뿐 아니라 전해액 용매 등의 원료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미 전해액은 미국 공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에 납품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충남 대산에서 전해액 유기용매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전해액 유기용매 관련해 한국 최초의 생산거점을 마련해 국산화에 기여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분리막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현재 생산능력 증설에 주력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