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분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악취’다. 악취는 축산 시설이 지역 사회에서 기피 시설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다. 지난 26일 방문한 제주 한림읍 소재 제주양돈농협 가축분뇨공동자원화공장에서는 이 악취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 시설은 매일 제주도 내 108개 돼지농장에서 수거한 300t가량의 분뇨를 수거해 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화 시설 내부에서 악취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방문 당시 분뇨와 같은 거무튀튀한 색깔의 물이 정화조 내에 가득 차 있었지만 글로 표현할 만한 냄새는 없었다.
‘분뇨와 같은 색깔’의 그 물은 한 차례 더 정화 과정을 거친 뒤 사람도 마실 수 있는 수준의 음용수가 된다. 여러 차례 필터를 거치며 비료로 쓸 퇴비와 액비를 걸러내고 나면 순수한 물만 남는다. 공장에서는 ‘정화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전국 86개 가축분뇨공동자원화 관련 시설 중 물을 생산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오영종 가축분뇨공동자원화공장 공장장은 “필터에서 미네랄까지 걸러진다는 점을 빼면 그냥 물”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대 생명과학기술혁신센터를 통해 이 물의 수질을 측정해 본 결과 음용수 기준을 충족했다. 이곳 관계자의 권유로 머뭇거리며 물을 마셔 본 참석자들 입에서는 “그냥 맹물이네” 말이 곧바로 나왔다. 이 물을 마시면 장관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공장이 가동한 후 방문해 이 물을 마신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현재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정화수 생산량은 적지 않다. 공장 가동 이후 지난달까지 15개월 동안 생산한 정화수는 3만6631t이다. 연간 3만t 이상 생산하는 셈이다. 2017년 기준 제주 물 사용량 9위인 A골프장이 잔디 관리를 위해 연간 사용한 지하수(30만3417t)의 10%를 대체해도 될 법한 양이다.
다만 이 물은 공장을 벗어나 활용될 수 없다. 현행법에는 가축분뇨를 정화해 만든 물과 관련한 기준이 없어 관련 기관은 이 물의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법이 기술 발전을 못 따라간 사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물은 공장 내부에서 조경수나 청소수 등 용도로만 쓰인다. 물이 부족한 제주도에서는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지적이다. 고권진 제주양돈농협조합장은 “수자원 활용을 위해 가축분뇨법이나 환경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제주=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