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생존율이 낮고 사용 가능한 항암제가 제한적인 대표적 암이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생존율(2015~2019년)은 13.9%로 주요 10대 암 가운데 꼴찌다.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렵고 환자의 70% 이상이 주변 장기로 퍼진 상태로 진단된다. 발견되면 말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췌장암은 종양에 혈관이 많이 없으며 주변 조직의 섬유화(딱딱해짐)로 약물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또 면역세포(T세포)가 거의 없어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역시 힘을 별로 쓰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지난 5년간 18개의 임상시험이 췌장암에서 실패했으며 현재 제한적인 약물 치료만이 이뤄지고 있다. 췌장암에는 촘촘하게 이어진 섬유성의 단백질 연결망이 있는데, 이것이 혈관을 눌러 항암 약물이 암세포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런 췌장암의 자체 특성과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 발생 등 한계로 새로운 개념의 치료 방법에 대한 탐색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학병원 교수가 세운 바이오벤처기업이 자체 개발한 치료용 초음파기기로 췌장암 등 난치성 암, 뇌혈관질환 치료 효과를 높이는 연구에 성과를 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이학종 교수가 창업한 아이엠지티는 최근 비열적 방식의 고강도집속초음파기기(IMD10)와 췌장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를 병용하면 약물의 침투력이 높아지는 지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 승인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았다. 췌장암 치료용 약물 전달 초음파기기 임상시험 승인은 세계 최초다.
‘하이푸(HIFU)’로 불리는 기존의 고강도 집속형초음파기기는 진단용 초음파에 비해 수천, 수만배 에너지로 고열을 내 암을 태워버린다. 하지만 이 방식은 높은 열로 인해 주변 조직 손상 위험이 있고 면역치료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반면 비열적 방식의 초음파기기는 진단 초음파의 수백배 수준인 저에너지를 사용해 열 발생 없이 투여된 항암제를 암세포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치료 방식은 이렇다. 우선 췌장암 치료제인 젬시타빈이나 폴피리녹스를 정맥주사하고 항암제가 혈관을 따라 전신을 돌게 한다. 이어 초음파기기를 환자의 췌장에 맞추고 영상을 보면서 3차원입체로 타깃 부위를 설정한다. 항암제가 혈관을 순환하다가 췌장 부위를 지날 때 집속초음파를 쏘면 암세포막이 열려서 더 많은 양의 항암 약물이 전달되도록 하는 원리다. 이학종 교수는 29일 “초음파가 암세포막에 기계적 자극을 줘서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초음파에너지를 쏘면 활성산소(ROS)가 1000배 이상 증가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고 면역세포가 항암 항원을 잘 인식하도록 돕는 ‘면역원성(ICD)’도 유발되는 것으로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됐다.
이번 임상시험은 국소 진행형(1·2기)과 경계성 절제 가능 환자(3기) 등 초·중기 췌장암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임상 책임자인 이재영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췌장암은 약물 전달의 어려움으로 기존 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새로운 약물 개발도 쉽지 않아 생존율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접근법이 절실하다”며 “이번 임상시험을 통해 비열적 방식의 고강도 집속초음파에너지가 암 치료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