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대전의 국민은행 주차장에서 은행 직원 1명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을 빼앗아 달아나 충격을 줬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들이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붙잡혔다. 이 사건은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였지만, 용의자들 구속으로 20년 넘게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강도살인 등 혐의로 A씨 등 2명이 구속됐다고 28일 밝혔다. 전날 대전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최광진 판사는 “도주 염려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이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사건은 한겨울이었던 2001년 12월 31일 대전 도심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이날 오전 국민은행 둔산점 건물 지하주차장에 있던 검은색 승용차에서 남성 2명이 현금 수송차량을 기다렸다.
이들은 차량에서 돈가방을 들고 내리던 은행 출납과장 김모씨와 보안업체 직원 등을 노렸다. 차량으로 김씨 등을 막아선 이들은 권총을 겨누며 돈가방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이들은 저항하는 김씨에게 실탄까지 쏴 그를 숨지게 했다. 범행에 이용된 승용차는 도난 차량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를 추적했지만, 현장에서 범인들의 지문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범인들은 복면을 쓰고 범행차량 유리창까지 3중으로 선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사건이 발생했던 지하주차장에는 CCTV 영상도 없어 보안업체 직원 등의 진술을 토대로 20~30대 남성이라는 것만 추정할 수 있었다.
당시 범인들이 범행에 사용한 권총이 경찰관이 사용하는 총기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총기 출처에 대한 관심도 집중됐다. 경찰은 이 권총이 사건 2개월 전 순찰 중 피습당한 경찰관이 소유하던 총기로 추정하고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은행강도 사건은 물론 총기 탈취 사건의 뚜렷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이듬해 경찰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20대 남성을 비롯해 용의자 3명을 체포했지만, 법원이 증거불충분 등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사건은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이어온 대전경찰청은 지난 25일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A씨 등 2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 있던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인물을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용의자들은 과거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과는 다른 이들이었다. 이들 일부는 범행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다음달 1일 브리핑을 열고 체포 경위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