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세미나에 가보면 성품교육을 ‘뛰어난 리더십 계발’, ‘성공할 수 있는 비결’, ‘행복한 아이 만들기’, ‘인성 문제의 해결방법’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상을 경쟁력 있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자질이 꼭 필요하지만 성품교육이 이 정도의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성품교육이 가야 될 길은 훨씬 더 크고 광대하다. 성품교육은 한 마디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며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이때 ‘성품’은 헬라어 원문에서 ‘그와 같은 종류, 천성, 성향’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어 신의 세계를 사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이와 같이 성품교육에는 신적인 차원이 있다. 단순히 인간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품교육이 인간을 위한 인간학적인 운동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신의 성품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많이 다르다. 현격하게 다르다.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에게 물었다. “하나님, 제 고통을 정말 아십니까? 아신다면 제 일에 이렇게 무관심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고통당할 때 나는 네 옆에서 같이 울었다. 네가 울 때 나는 통곡을 했고 네가 아파할 때 나는 너보다 더 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런데 너는 내 고통을 아니? 내가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희의 일생을 인도하고 있는지 아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와 같이 우리는 평생 우리의 마음만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성화가 잘 안 된다. 내 마음과 내 고통만 생각하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매우 크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축복 때문에 잘못되고 어그러진 길로 갈 때가 많다.
인간이 왜 죄를 지을까? 인간은 욕망 때문에 죄를 짓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은 물질이 있을 때도 죄를 짓고 물질이 없을 때도 죄를 짓는다. 물질이 있을 때는 욕망이 자극을 받아서 죄를 지을 때가 많고 물질이 없을 때는 하나님에 대한 실망 때문에 죄를 지을 때가 많다. 목회자인 필자의 경우에는 물질이 없을 때 지은 죄가 훨씬 더 많았다. 상하고 아픈 마음,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부족한 삶을 살 때 제일 많이 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다. 이러한 원망이 하나님에 대한 저항과 도덕적인 자기 파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물질이 많이 있어야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없어도 죄를 지을 방법은 많다. 아주 작은 물질만 있어도 죄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물질이 많을 때는 교만 때문에 죄를 짓고 물질이 없을 때는 절망 때문에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성화의 길을 가고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첫째 요건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내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죄를 짓는 일도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 차원의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인간의 마음이 같아지는 것, 그래서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채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성품교육의 가장 튼튼한 기초가 된다. 성품교육은 도덕적인 덕목 몇 가지를 배워서 인생을 경쟁력 있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성품교육을 진행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을 빈틈없이 살고 싶었던 프랭클린에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인생을 성공하려면 몇 가지 자질이 필요한데 앞으로 한 달은 인내를 훈련하고, 다음 달은 용기를 훈련하고, 다음 달은 절제를 훈련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 인생을 성공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순서대로 훈련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한 달 동안 인내를 훈련한 후에 다음 달에 용기를 훈련하려고 하면 그 전 달에 훈련한 인내의 자질이 어느새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인내의 자질을 훈련할 때는 인내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용기의 자질을 훈련할 때는 또 다시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왜 이미 훈련한 자질들이 내면화가 안 될까? 첫째는 인생의 기본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 성품훈련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으로만 끝나면 성품은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 된다. 성령이 폭발적으로 역사할 만한 일이 못 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요16:14). 그러므로 성품훈련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될 때 성령이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성품훈련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내를 훈련할 때 왜 해야 될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서? 좋은 결실을 보기 위해서?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 인내하면 성공하고 싶을 때는 인내가 어느 정도 되지만 그런 마음이 없을 때는 인내가 안 된다. 인간의 생각에 따라 인내가 되었다 안 되었다 하는 것이다. 또 학생들 중에는 성공이라는 말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아이들이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 “얘들아,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 인내하자.”라는 말이 통할 리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성품교육은 한계가 있고 효과도 크지 않다. “내가 언제까지 인내해야 돼? 나 하기 싫다고”라는 아이들의 푸념이 들려오게 된다. 그러므로 좀 더 근본적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인내해야 될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싶지만 왜 안 주시고, 못 주시고, 더디 주시는지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원하신다. 또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우리를 채워주기를 원하신다. 그런데도 우리가 세상 것만 원하면, 세상 것이 주는 만족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에 비교될 수 없고, 세상 것은 일시적인 만족을 줄 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은 영원하며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적인 만족이기 때문에, 이러한 신적인 만족을 먼저 주시고 난 다음에 세상 것을 주시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원리를 학생들에게 말해줄 때 학생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품교육의 토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면 나도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시면 나도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내 죄를 싫어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선교에 있으면 나도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100% 내 마음이 되는 것, 이것이 성품교육의 목표이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오고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이 된다. 한번 생각해보자. 매일 뭔가를 마음에 품으면 결국 어떻게 될까? 매일 마음에 품는 그것이 그 사람의 성품이 된다. 그래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면 사랑의 사람이 되고 악을 마음에 품고 살면 악의 사람이 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이 된다(잠23:7). 그러므로 아이들도 아이들의 마음에서 성품이 나오고 아이들의 마음이 성품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마음으로 계실까?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고”와 같은 복은 사실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심령이 매우 가난하신 분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이 외에 인간에 대해 죄에 대해 “애통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을 투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들여다보자.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고” 이 모든 것은 성품이 되는 것들이다. 이런 마음이 “겸손, 온유, 의로움, 긍휼과 배려, 순결과 깨끗함” 같은 성품이 된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성품이 나오고 마음이 곧 성품이 된다. 성품의 원리가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이 되도록 하는 노력 없이 그저 몇 가지 도덕적인 덕목을 익히게 하는 것으로 성품훈련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무 기초가 없는 땅에 집을 지으려는 것이며 본질이 아닌 표면적인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태산이며 바위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야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품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또한 이 마음을 알아야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세계, 신의 세계에서 살 수 있다.
◇필자 이해주 박사는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그룹 연구원으로 근무했디.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기독교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석사논문은 ‘청소년의 성품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이며 박사논문은 ‘기독가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성품교육 전문가이다. 현재는 씨앗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