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R&D)이 차츰 아웃소싱(외부조달)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활발하면서 외부와의 손잡기가 그만큼 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흐름에 올라타면서 자체 R&D 센터 확충·강화에 나섰다. 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전통적 의미의 R&D 센터를 넘어서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겨냥한 ‘클러스터형’으로 이동하고 있다.
28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2020년 R&D에 가장 많이 투자한 20개 제약·바이오 기업의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프로젝트)’ 약물 45% 이상이 외부에서 확보됐다. 매출이 가장 큰 5개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휴미라·키트루다·레블리미드·옵디보·엘리퀴스는 모두 외부 제휴를 거쳐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에서 내부 자료를 외부와 공유하면서 협업으로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공동연구, 아웃소싱, 단순투자, 기술도입·이전(라이선싱), 인수·합병(M&A) 등의 방식이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은 피할 수 없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협업이 늘어날수록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R&D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제약사뿐 아니라 일반 의약품에 강점을 갖는 제약사도 세포·유전자치료제, 면역치료제 같은 고부가가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협업 방식을 시도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성과도 좋다. 글로벌 경영컨설팅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외부 아웃소싱 약물이 내부 개발 약물보다 임상 성공 가능성이 크다. 2016~2020년 임상 1상에서 외부 파트너십을 거쳐 개발된 약물은 회사 자체 개발 약물보다 출시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았다.
한국도 자체 R&D 센터를 확장하며 외부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늘리는 중이다. 한국판 ‘J&J 이노베이션 랩’을 만드는 식이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에서 만든 J&J 이노베이션 랩은 바이오 스타트업의 이노베이션 센터이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현재 120여개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실험하며 아이디어를 키우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다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J&J 이노베이션 랩을 모티브로 R&D 센터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연구 협업 전담조직인 대웅혁신큐브를 서울 강서구 마곡에 짓고 있다. 마곡에 입주한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신약 개발 역량을 끌어올리고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제2캠퍼스’를 건립하면서 바이오벤처 육성 공간인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갖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2캠퍼스 등에 입주한 벤처·중소기업이 연구개발 및 사업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글로벌 연구개발 시설도 갖출 계획”이라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