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컴퓨터를 잘 알지도 잘 다루지도 못하는 컴맹에 가까웠다. TV 리모컨도 똑바로 화면을 향해 조준 사격하듯 올리고 버튼을 누르곤 했던 그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연설 때마다 “누구든 집에서 버튼 하나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다들 좀 황당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알고 보면 ‘버튼 하나’에 열쇠가 있다. 전자기기가 어렵기만 한 DJ도 버튼 하나는 누를 수 있었고, 그만큼 편리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정책은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정보통신강국과 전자민주주의라는 거창한 공약을 그렇게 ‘실감나게’ 설명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 관한 그의 비전은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된 1980년대의 감옥에서 시작됐다. 그는 재임 중에도 농담 삼아 “감옥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마음 놓고 책 읽을 시간’이 그때밖에 없었기에 나온 이야기였다. 그에게 감옥은 ‘작지만 큰 대학’이었고, 감옥에서의 가장 큰 위안은 독서였다. 수감 생활 중 그가 읽은 책은 600여권에 이른다. 그중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있었다. DJ에게 그 책은 새로운 시대의 지침서였다. “산업화 시대에는 뒤처졌지만, 정보화 시대에는 앞서갈 수 있다. 만약 감옥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진리를 깨칠 수 없었을 것이다.”(김대중 자서전)
정보통신강국의 깃발을 처음 내건 것은 김영삼정부였다. 정보통신부를 발족시키고, 정보화 추진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정부 당시 전자교환장치(TDX)가 도입된 것이 그 씨앗이었다. TDX 기술로 전화선을 사용하는 PC통신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 씨앗을 활짝 꽃피운 게 김대중정부다. PC통신을 넘어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연 것이다.
DJ는 1997년 대통령 당선 직후 토플러에게 새 정부의 정보통신 분야에 관해 자문을 구했고, 취임 뒤엔 빌 게이츠와 손정의를 만나 앞으로는 브로드밴드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 내용은 정보화 강국의 설계도인 ‘사이버코리아21’에 반영돼 4년간 1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ADSL, 브로드밴드와 같은 신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초고속통신망 개통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미국이 정보화를 국가적 과제로 내세운 것도 불과 1993년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앨 고어 부통령을 ‘슈퍼하이웨이 프로젝트’ 책임자로 지명해 초고속통신망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은 광활한 대륙을 연결해야 하는 물리적 어려움 때문에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균질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흔히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국토가 좁은 우리에게는 정보화 시대가 기회였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설 수 있다’는 DJ의 꿈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인 비전이었다.
다만 기술의 발전은 정보통신강국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거기에 ‘세계에서 컴퓨터를 제일 잘하는 국민’이라는 충분조건을 갖췄기에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보통신강국이 될 수 있었다. 높은 참여 속에 1000만 국민 무료 컴퓨터 교육이 진행됐고, 1999년 37만 가구에 불과하던 인터넷 가입자가 2002년 10월 1000만 가구를 넘어섰다. 말 그대로 전 국민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혹자는 DJ가 시대를 잘 만났다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전임자가 뿌려놓은 씨앗과 개척해놓은 길을 순탄하게 걸어간 것 아닌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속에 정보통신 분야의 계획이 수정되거나 예산이 축소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특히 정부로서는 책임 문제가 따르는 만큼 신기술 도입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DJ가 김영삼정부의 강봉균 정통부 장관을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해 과감하게 정책을 주도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기에, 즉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실렸기에 그와 같은 획기적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지도자의 비전과 국민의 참여가 만나 ‘버튼 하나’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도 큰 목소리만 더 커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DJ가 꿈꾸었던 전자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미완이듯.
박선숙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