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일

입력 2022-08-29 04:07

남편을 잃고 의붓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 젊은 여자가 어느 날 시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부모 자격을 의심하며 “제 부모는 멀쩡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요시다 야스히로 감독의 영화 ‘가족의 색깔’의 한 장면이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 모르겠다는 자책 뒤에 이어진 저 말은 설명보다는 독백처럼 들렸다. 제 부모의 실격에 대해 말하는 일은 그렇게 혼잣말처럼밖에 할 수 없는, 누가 묻는다고 “이랬어요”라고 선뜻 답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갑자기 부모 얘기를 꺼낸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어떤 부모였느냐고 묻지만 여자는 주방 싱크대 앞에서 등을 돌린 채 말이 없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어릴 적 부모에게 당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이 대목은 아동학대의 여러 사례를 상상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것은 부친의 성폭력, 모친의 방조였다.

한 특별지원보호시설 원장의 말을 옮긴다. “자기 자식을 성적으로 폭행했다면 한마디로 짐승이죠. 그러면 엄마도 분노해서 뛰쳐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집일수록 엄마가 경제력이나 삶의 의지가 없다 보니 아빠 편을 들더란 거죠. ‘아빠를 집어넣으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 그러니까 니가 조금 이해해라’ 이러면서.”

특별지원보호시설은 친족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위험 가정에서 분리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 특화시설이다. 우리 탐사팀은 전국 4곳 중 3곳을 방문해 초·중학생부터 퇴소한 청년까지 9명을 만났다. 이곳에서 지내다 스물이 다 됐다고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던져지는 이들이 요즘 회자되는 ‘보호종료아동’(실제로는 청년)이다. 넷플릭스 첫 화면에서 서성거리다 추천작으로 뜬 ‘가족의 색깔’을 보게 된 건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던 때였다.

그들은 주로 초등학생 때부터 나쁜 일을 당했다.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는 걸 받을 때까진 아빠가 사랑해서 그러는 줄만 알았고, 나쁜 일이란 걸 알고 나서는 가해자가 부모라서 감히 어쩌지 못했다. 남몰래 이런 삶을 견디는 아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할 리가 없다. 어딘지 위화감을 풍겨서, 교우 관계에 서툴러서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다. 한 아이는 처음 보호시설에 왔을 때 ‘바람 불면 훅 쓰러질 정도로 뼈밖에 없는 마른 몸’에다 머리카락에 이랑 서캐가 가득해서 참빗으로 빗어줬다고 그곳 원장은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내가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이 지저분하다며 멀리하던 동급생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유난히 말이 없고 무표정했던 그 아이는 늘 움츠려 있었다.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걸 일상으로 받아들인 듯 반응하지 않고 살았다. 그가 음지에서 어떤 학대라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어땠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부모에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뒤늦게 자책감이 든다.

위험한 부모로부터 아이를 구출하는 일은 아이가 말할 수 없는 위기를 눈치채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시설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그들의 위험을 알아본 어른들이 있었다. 담임교사, 상담교사, 성교육 강사 등. 그들은 아이 몸에 난 상처, 행색이나 분위기, 생활 태도, 지나가는 말 같은 것들로 학대 피해를 짐작했다. 남의 가정사에 손대는 일이 귀찮다거나 무섭다고 덮지 않았다. 신고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더 오랫동안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 “참고 살지 않았을까요? 참다가 죽었을 수도 있고.” 중2 때 신고해준 선생님 덕에 구조될 수 있었던 스물한 살 현경(가명)씨가 내민 대답이다. 그 교사는 한 아이를 살린 것이다.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