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온라인 세상은 한 인플루언서가 올린 글 하나로 발칵 뒤집어졌다. 그는 자신의 SNS에 유명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필로폰 함. 제 방인가 회사 캐비닛에 주사기가 있다”고 썼다. 실제 약에 취한 사람처럼 정돈되지 않은 문장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는 이튿날 우울증 약 탓이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며칠 뒤 마약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대중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가 유명 대기업에 다니며 착실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대표적 음지 범죄인 마약이 어느덧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방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약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도 논란거리였다. 마약 범죄가 늘었느냐를 놓고 야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수완박 시행령에 마약 범죄를 경제 범죄에 집어넣는 꼼수를 썼다”며 “아주 나쁜 예이며, 위헌 위법하다”고 말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마약이나 조폭 범죄에 공백이 발생했다기엔 통계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 장관은 “건수로만 볼 게 아니라 검찰이 수사하던 굵직한 마약, 조폭 사건이 그대로 증발한 상태”라고 반박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울산의 한 캠핑장에선 필로폰보다 환각 효과가 300배인 LSD를 투약한 남성 3명이 체포됐다. 한 남성은 맨발로 캠핑장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드러눕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다른 남성 2명은 뒷문이 열린 SUV 차량을 몰고 질주하다 인근 도랑에 빠졌다. 당시 상황이 촬영된 CCTV엔 부모와 함께 캠핑장을 찾은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우리 사회에 범죄가 흉흉한지 일반인은 알 길이 없다. 피부로 느끼는 건 피해자가 되고 나서다. 얼마 전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직후였다. “범죄든 홍수든 평소엔 이게 잘 관리가 되는지 아무도 몰라요. 범죄자 잡는 것도 홍수가 나지 않게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어요. 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모두가 알죠.”
최근 벌어지는 범죄 양상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수준이다. 단순히 마약 범죄만이 아니다. 회삿돈을 빼돌리는 횡령 사고는 오스템임플란트(2215억원) 우리은행(697억원) 등 민간 기업을 넘어 강동구청(115억원) 한국수자원공사(85억원) 등 공직 사회에까지 침투했다. 근래엔 40대 의사가 검찰과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41억원을 빼앗긴 사건이 벌어졌다. 단순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당부 정도론 막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렀다. 은행권에서 벌어진 8조원 넘는 수상한 해외 송금을 두고는 검찰과 금감원, 국가정보원까지 뒤늦게 총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범죄 억제력이 견고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검경 수사권을 다시 조정한다고 금방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지난 26일 마무리된 검경 협의체에 참여했던 법학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은 “회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고 촌평했다. 자기네가 수사권을 갖겠다고 싸우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완 수사나 재수사를 놓고 각자 ‘상대방이 하라’는 식으로 떠밀더라는 것이었다. 한 참석자는 “가뜩이나 일 많은데 보완 수사 같은 건 서로 귀찮다는 식이라 황당하단 생각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한 장관은 최근 여러 석상에서 “깡패나 마약 수사를 왜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검수완박 법률 시행령을 고쳐 직접수사 범위를 늘린 이유를 강변하면서였다.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 역시 ‘일하는 검찰’로 다시 돌아오겠다며 전세 사기·보이스피싱 등 서민 범죄에 칼을 빼 들었다. 말뿐일지 지켜볼 일이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이제는 서로 범인 잡겠다고 싸우는 모습이 보고 싶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명분이 아닌 수사 실적이어야 한다.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