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당하는 암”… 복통·빈혈 땐 위·대장과 함께 살펴야

입력 2022-08-29 21:11
소장내벽 가장 바깥쪽 덮고 있는
선세포서 발생 선암이 전체 50%
대체로 발견 늦고 예후도 나빠
재발·전이 잦아 5년 생존율 30%
붉은색 육류·훈제 음식 즐기면
암 발생률 2∼3배 증가 연구도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박재준 교수가 소장암 진단을 위한 전용 내시경 검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세의료원 제공

A씨(64·여)는 2년 전 복통과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 맹장염인 줄 알았는데, 수술 준비를 위해 촬영한 CT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조직검사에서 림프절과 대장까지 퍼진 소장암 3기로 진단돼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재발이 잘 되는 암이라는 의사 말에 식습관에 특히 신경쓰고 정기검진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위와 대장 사이에서 음식의 소화·흡수 기능을 하는 소장은 배안 전체 장관의 75%를 차지하지만 위·대장 등에 비해 암 발생은 아주 드물다. 소장의 전체 길이는 5~6m나 되며 십이지장, 공장, 회장으로 구성된다. 2019년 기준 소장암 환자는 전체 암의 0.4%인 1051명이 발생했다. 인구 10만명 당 2명꼴로 발병해 희귀암(10만명 당 6명 미만 기준)에 해당된다.

소장에 암 발생이 적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제기돼 왔다. 국립암센터 대장암센터 박성찬 외과 전문의는 29일 “소장에는 장내 세균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암의 씨앗이 되는 만성 염증이 잘 발생하지 않고 면역세포가 굉장히 많아 감염에 대한 방어기전도 잘 돼 있다”며 “소장이 길긴 하지만 음식물이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 장 점막에 자극이 적은 것도 이유로 거론된다”고 설명했다.

배 안 장관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장의 모습. 순천향대서울병원 제공

소장암은 암세포 기원에 따라 선암, 유암종(신경내분비종양), 악성 림프종, 육종, 위장관기질종양(GIST) 등으로 나뉘고 다른 부위에서 전이된 암도 있다. 소장 내벽의 가장 바깥쪽을 덮고 있는 선세포에서 발생한 선암이 전체 소장암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유암종(20%) 림프종(15%) 육종(10%) 순으로 많다. 문제는 가장 많은 선암의 발견이 대체로 늦고 예후가 제일 나쁘다는 점이다. 5년 생존율은 30% 안팎이다. 유암종과 림프종 등은 악성도가 심하지 않고 항암제도 잘 듣는 편이다.

소장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음식이다. 특히 붉은색 육류와 소금에 절인 훈제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경우 소장암 발생이 2~3배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또 설탕이나 탄수화물 섭취가 많을수록, 음식에 포화지방이 많을수록 소장암 위험이 높아진다.

대장에 100개 이상의 폴립(혹)이 돋아나는 가족성 용종증은 십지이장 선암의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소장의 만성 염증성 질환인 크론병, 소장의 유전성알레르기질환인 셀리악병, 소장의 용종성 질환인 포이츠-예거 증후군 등도 소장암 진행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젊은층 발병이 늘고 있는 크론병의 경우 소장이나 대장에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장기간 관리가 안 되면 암이 될 수 있는 만큼 염증 관리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이밖에 신경섬유종증, 리프라우메니증후군 같은 유전성 질환과 방사선, 여성 호르몬, 살충제 등 환경적 요인은 소장의 육종 위험을 높인다. 따라서 소장암 예방을 위해 위험요인이 되는 음식 섭취를 되도록 줄이고 야채 등 섬유질이나 전곡류를 자주 먹는 게 좋다. 아울러 가족성 용종증 등 유전질환을 갖고 있으면 주기적인 내시경 검사를 통해 소장의 이상 유무를 보다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 전문의는 “소장암은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특별히 권장되는 조기 검진법이 없다. 그래서 알면서도 당하는 암”이라고 했다. 그렇다 보니 늦게 발견되거나 복부의 다른 수술 중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암이 진행돼 커지면 소장을 막는 장폐색에 의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복통과 위장관 출혈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복부 통증은 장폐색과 관계없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으며 십이지장 쪽 소장암은 후복강을 침범해 췌장암처럼 등이나 허리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대변 등을 통해 위장관 출혈이 의심되면 우선 위와 대장에 출혈 부위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다면 꼭 소장에 대한 검사를 해봐야 한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재준 교수는 “특히 남자의 경우 복통이 있으면서 원인 모를 빈혈이 있다면 위·대장과 함께 소장까지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장암의 약 50%에서 식욕 부진을 동반한 체중 감소를 보인다. 배꼽 주변에 덩어리가 만져지는 경우도 25%나 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증상들이 나타났을 땐 이미 3기 이상 진행된 상태라는 점이다.

소장암은 소장 조영검사나 CT촬영, 캡슐내시경(영상 촬영이 가능한 알약 형태 내시경), 소장 전용 내시경으로 진단할 수 있다. 다만 소장에는 선종이나 평활근종, 지방종, 섬유종 같은 양성 종양도 생길 수 있는데, 악성 종양과 정확한 감별을 위해선 소장 내시경을 통한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 수술이 기본적 치료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 조성우 교수는 “수술 후 재발 없이 완치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재발과 전이가 잦다. 특히 선암이 다른 소장암에 비해 많이 재발하며 병기가 심할수록 재발 위험이 높은 만큼 추적 관찰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