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포스트 홍콩’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의 하나인 영국의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해 내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같은 장소에서 2~6일 한국 최대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이하 키아프)도 동시에 열린다.
프리즈 서울에는 가고시안, 하우즈앤워스, 타데우스로팍 등 110여개 갤러리, 키아프에는 164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같은 시기 강남구 세텍(서울무역전시켄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키아프 플러스’까지 포함하면 총 350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에서 열리는 최대 미술장터를 보기 위해 컬렉터뿐 아니라 구겐하임 등 주요 미술관 관장들이 무더기로 서울을 찾는다.
‘삼청 나이트’ ‘한남 나이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2일 동시 개막에 맞춰 갤러리 거리인 삼청동과 한남동 일대는 사상 처음으로 밤에도 불을 밝힌다.
외국계 갤러리가 밀집한 한남동에선 페이스, 리만머핀, 타데우스로팍 등 외국 갤러리 서울 지점과 갤러리바톤, 휘슬, P21 등 한국 갤러리가 프리즈의 요청을 받아 1일 밤 전야제처럼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야간 개장하는 ‘한남 나이트’를 한다. 가벼운 칵테일 파티를 하며 해외 미술계 인사들에게 소속 작가를 세일즈하는 것이다. 프리즈 서울 측은 구겐하임, 뉴욕 현대미술관(모마), 영국 테이트, 홍콩의 M플러스 등 주요 미술관 관장과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는다고 밝혔다.
페이스 이영주 대표는 “아드리안 게니와 팀랩 개인전 개막식을 일부러 한남 나이트에 맞춰 한다”면서 “구겐하임의 경우 관장뿐 아니라 후원 컬렉터들로 구성된 이사회 멤버 10여명이 한꺼번에 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미술계 슈퍼 파워가 한꺼번에 한국을 찾는 것은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갤러리 관계자는 “손님 명단에 오스트리아 공주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홍콩의 부동산 재벌인 뉴월드그룹 부회장 에이드리안 청, 스위스 대표 컬렉터인 마야 호프만 루마재단 회장 등 슈퍼 컬렉터도 방한한다.
삼청동 일대는 2일 불을 밝힌다. ‘삼청 나이트’로 명명된 행사에는 국제, PKM, 학고재, 현대, 원앤제이, 페로탱갤러리 삼청점 등이 참여해 자정까지 문을 연다.
국립현대미술관도 31일 서울관, 내달 3일 서울관·덕수궁관이 9시까지 문을 연다. 삼청 나이트가 있는 2일에는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올해의 작가’ 10주년 행사를 저녁 6시 비공개로 갖는데, 미국의 구겐하임, LA카운티미술관(LACMA), 뉴욕 모마, 영국 테이트, 일본의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홍콩 M+미술관 관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윤범모 관장과 따로 만난다. 인접한 아트선재센터도 밤 11시까지 야간 개장한다. 서소문의 서울시립미술관도 1일 저녁 옥상에서 ‘디제잉파티’를 하는 뮤지엄 나이트 행사를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위기? 기회?…‘메기 효과’ 기대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굴지의 외국 갤러리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이 세계 시장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작가에게는 기회”라며 “반대로 한국 갤러리로선 우리나라 컬렉터들이 해외 갤러리에 직접 노출돼 자칫 고객을 뺏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프리즈 서울 관계자는 “컬렉터도 컬렉터지만 모마 등 주요 미술관 관장의 무더기 한국 방문이 갖는 의미가 더 크다”면서 “미술시장에 영향력이 큰 관장들이 한국 작가, 한국 갤러리들을 둘러보고 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소개한다. 그런 관장들이 오면 큐레이터나 컬렉터들이 동반해 한국을 찾는 등 파급 효과가 크다”고 기대했다.
이런 이유로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프리즈 개막에 맞춰 전시 일정을 정비했다. 페로탕갤러리는 1호 삼청점에 이어 2호 도산파크점을 프리즈에 즈음해 27일 개관했다. 일부 화랑은 작가 작업실 탐방 일정을 잡느라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안갤러리 관계자는 “구겐하임 측에서 이건용 작가 작업실 탐방을 원했으나 마침 이건용 작가 개인전이 우리 갤러리에서 열려 이곳에서 미팅하는 것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미술계 주요 인사들의 매머드급 한국 방문은 홍콩이 시진핑 정권의 탄압으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서 매력을 상실한 이후 ‘포스트 홍콩’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포스트 홍콩 자리를 노리고 아시아 주요 도시의 각축전은 치열하다. 싱가포르는 내년 1월 국제아트페어 아트 SG를 개최하고 도쿄는 내년 7월 도쿄 겐다이(東京現代)를 창설한다. 이 가운데 한국화랑협회가 향후 5년간 프리즈 서울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서울이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도쿄의 경우 일본 경제가 가라앉았고 싱가포르는 미술품에 관세를 매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낫고 관세가 없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한국의 영화, 팝 등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미술로 확장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황달성 화랑협회 회장은 “음식이든 뭐든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 붙으면 다 인기가 있지 않나. 프리즈 서울이 한국 미술계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메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