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기독교인들이 빨치산 등에 의해 전남 영암군 일대에서 집단 학살된 사실이 국가 차원 공식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6·25전쟁 중 전국에서 자행된 학살 전반에 대한 조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5일 ‘전남 영암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1950년 8~11월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서 민간인 133명이 지방 좌익 세력과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민군 퇴각 후 지방 좌익과 빨치산들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집단 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민간인 피해자에는 기독교인이 대거 포함됐다. 영암군 학산면의 ‘상월 그리스도의교회’(상월교회) 교인 35명은 1950년 11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동네 야산에서 희생됐다. 이 중 희생자 16명의 피해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당시 희생된 피해자의 후손은 이번 조사에서 “당시 좌익들이 밤에 나타나 ‘교회에 안 다니면 죽이지 않겠다’라고 위협했지만 교인들은 신앙심이 깊어 죽음을 택했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교인들이 주로 우익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미국 선교사와 가까워 친미세력으로 간주됐고, 예배당 사용 문제를 두고도 인민위원회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분석했다. 우익 인사, 경찰 가족 등도 집단 학살 피해자였다. 또 일가족 단위 희생이 많아 사망자 중 15세 이하 아동 비율이 36%를 차지했다. 여성, 노인도 대거 사망했다.
진실화해위는 학살 피해에 국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사건을 정규 교과과정에 반영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을 실시할 것도 권고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연구 용역을 통해 전국에서 개신교 1026명, 천주교 119명 등 모두 1145명의 종교인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6·25전쟁 당시 기독교인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한 직권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