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의료계, 학계, 산업계,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 공감했다. 다만 도입 방안에는 이견을 보였다.
국민일보와 쿠키뉴스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2022미래의학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박상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김주영 휴이노 최고의료책임자(CMO),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이 패널 발표에 나섰다. 강대희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좌장을 맡아 종합 토론을 이끌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지난 2020년 2월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년반 동안 비대면 진료 누적 건수는 3180만건(전화·화상 상담 및 약처방, 재택치료 건수 합계)이다. 비대면 진료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110대 국정과제로 삼았다.
패널 발표자들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편리함이 아닌 안전성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제도화 방안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의견을 내놨다.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연구조정실장은 “처방약의 경우 마약 및 향정신성 약물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처방약 리스트를 최소화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질환도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초진은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고 재진은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만 섬, 산간벽지, 원양어선, 교도소, 중증장애 환자 등에 대해서는 초진을 허용하는 예외를 두자고 했다. 아울러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비대면 진료 제공 주체를 환자 거주 지역 내 1차 의료기관에 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문 실장은 “공공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정부가 개발하고 의사협회가 운영·관리하는 방안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협회 의견을 적극 듣고 보완해 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계는 의료법을 개정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철 서울대 교수는 현재 국회에는 2건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인데,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현재처럼 한시적으로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게 되면 의료사고나 편법 행위를 막기 어렵다면서 △의약품 온라인 판매 및 배송 허용 △의약품 분류체계를 개편해 허용품목 구체화 △수가체계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비대면 진료를 의원급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도입하고 만성질환 등 일부 질환에 한정해 실시한다는 복지부 구상에 대해서는 “비대면 진료를 의원급에 한정해 허용하면 대형 플랫폼이 의료시장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대면 진료 대상 질환을 법으로 한정하는 것 역시 의사들로 하여금 형사처벌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해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요자의 편의를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 교수는 “비대면 진료를 재진에만 한정하면 직장인이나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비대면 진료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면서 “실질적으로 환자들이 활용하기 용이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는 낮은 수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주영 휴이노 최고의료책임자(CMO)는 저수가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우리 회사는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는 국내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책정하는데 국내에서 원가가 낮게 측정돼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면서 “현실적인 수가 책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최고의료책임자는 “적정 수가가 이뤄져야 비대면 진료도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은 비대면 진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복지부가 의료계와 산업계 중심이 아닌 환자 관점에서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대면 진료에 비해 환자 상태 확인이 불완전해 부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환자들이 많다”며 “디지털 취약계층은 비대면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초진이 아닌 재진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면서 환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도 짚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안 대표는 아울러 “비대면 진료의 주요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합의체를 구성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의약단체와 산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의약품 오남용 조장 금지 △환자에게 사은품 제공 등 호객행위 금지 △약국과 의료기관에 알선·유인 행위 금지 △의사·약사 전문성 존중 △환자·의료인 개인정보 보호 등 의무사항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고형우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우려 사항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의약계와 조속히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며 “안전하고 편리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