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출산율, 생산인구 감소, 고령화가 맞물린 인구 위기. 줄어드는 교세에도 증가하는 목회자. 내려갈 곳 없이 추락한 한국교회 신뢰도. ‘긍정적 시그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목회 환경에 전환점을 찾기도 요원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개척’은 교회 앞뒤로 붙이기 두려운 수식어가 돼버렸다. 하지만 위기로 점철되는 현실 가운데서도 ‘로빈슨 크루소’ ‘인터스텔라’처럼 기독교 역사엔 늘 그래왔듯 답을 찾는 이들이 존재한다. “개척 외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공동체 사역이 없다”고 외치며 교회 개척 운동을 펼치고 있는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라이트하우스·대표 홍민기 목사)’도 그중 하나다.
라이트하우스는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아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사명’을 고민하며 지난 2019년 5월 시작됐다. 4년 차를 맞은 지금, 라이트하우스 사역 현장에선 그 이름에 ‘운동성’을 뜻하는 무브먼트가 붙여진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길을 따라 정착과 안정 대신 나그네로 부름 받은 노마드(nomad)로서 13개의 공동체가 수도권(서울숲 명동 장한평 고양 등) 부산 경주 포항 순천 댈러스 등 각 지역에 흩어져 교회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공감하며 개척을 결단한 목회자들과의 소통도 ‘플랜팅 시드(planting seed)’라는 이름으로 확장되고 있다. 교단과 교파는 물론 지역, 세대를 초월한 개척 목회의 지향점부터 시간 관리법, 목회 시기별, 공동체 특성별로 고민해야 할 A부터 Z까지를 기탄없이 묻고 답하며 저마다의 사역을 준비하는 예비개척학교인 셈이다. 운동을 이끄는 홍민기 목사를 만나 일대일 플랜팅 시드를 진행하듯 묻고 들어봤다.
-라이트하우스가 지향하는 교회론이 궁금하다.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성도 한 사람이 교회’라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사명이 시작됐기 때문에 초기부터 공간(건물)에 관심이 없었고 간판도 달지 않았다. 교회 이름을 따로 정하지 않고 교회 개척 운동을 뜻하는 ‘라이트하우스’ 뒤에 지역 이름만 붙인 것도 같은 이유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다. 교회 개척을 ‘공간’부터 고민하면 재정에 대한 압박이 클 수밖에 없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기쁨이 줄어든다. 기쁘지 않으니 성도들을 이끌지 못하고 소진으로 향하는 거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부터 견고하게 준비해야 한다.”
-지역마다 목회 환경은 제각각이다. 라이트하우스의 지향점이 어떻게 접목되나.
“내 역할은 예비 개척자들의 특기와 은사를 죽이지 않고 발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신학교 과정만 해도 평준화가 심하다. 제각각인 목회 환경처럼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독특함이 극대화돼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산다. 나는 개척 목회, MK사역, 대형교회 담임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각자에게 주신 기질과 은사가 라이트하우스 각 교회에 접목될 때 찾아오는 외부의 오해와 공격이 있다. 그럴 때 울타리와 방패가 돼 주는 것도 역할 중 하나다.”
-‘플랜팅 시드’를 통해 만나는 이들과 어떤 얘기부터 나누나.
“첫 강의 제목이 ‘핑크빛에서 잿빛으로’다(웃음). 개척하면 사람들이 몰려올 거라는 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개척 멤버를 준비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대체로 3년 안에 초반에 열심을 냈던 성도들도 지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브랜딩’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개척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자 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입니다’라고 명확히 브랜딩을 했을 때 비로소 비전이 구체화되고 교회 이름도 지을 수 있다.”
-개척한 뒤 당면하는 상황도 제각각이다. 단계별로 설명해달라.
“일단 개척 후 장년 성도 20명을 모으는 게 1차 목표다. 이 시기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기껏 5명 모였는데 5명에 신경 안 쓰고 교회 밖에 관심을 두는 거다. 온 사람이 계속 있을 거라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온다. 20명부터는 예배에 더 집중해야 한다. 예배에서 오는 부족함을 일대일로 극복할 수 없는 단계다. 예배 순서는 간단할수록 좋다. 찬양 설교 합심기도 축도만으로 충분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 콘셉트를 분명하게 해서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호흡하는 것이다.
성도 30명 수준이 위기가 오기 쉽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때 소그룹 리더 훈련이 중요하다. 리더 5명 정도와 좋은 훈련 프로그램 진행해보는 것도 좋다. 소그룹으로 나뉘면 성도들의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마련이다. 담임 목사가 한쪽 편을 드는 순간 치명타가 된다. 단기적으로 위기를 완화하기보다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
위기를 잘 통과하면 70여명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데 반드시 관계적인 문제로 위기를 겪는 시기가 온다. 리더로서 조율에 실패하면 한 가정이 20여명을 데리고 떠나기도 한다. 속상함과 우울함을 사모와 자녀들에게 표출하는 우를 범하기도 쉽다. 남아있는 성도들부터 살뜰하게 챙기며 집중하다 보면 ‘리바운드’ 되는 때가 분명히 온다.”
-가시밭길의 연속 같다. 목회자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관리도 필요해 보인다.
“그게 무브먼트가 가진 힘이다. 30년 넘게 목회해도 성도가 교회를 빠져나가는 건 고통이다. 기도하고 성경 봐도 힘들다. 이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만나서 국밥 한 그릇, 커피 한잔하면서 풀어내는 거다. 그래야 회복탄력성이 생긴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히려 교회 개척에 긍정적 요소가 됐다고 본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잖나. 본질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로운 시도를 찾는 성도들도 많아졌다. 지금은 개척의 호기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