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기돈 크레머와 그가 이끄는 ‘크레메라타 발티카 앙상블’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다. 1947년생인 크레머는 75세를 맞았고 97년 창단된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25주년이다. 이를 기념하는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크레머와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다음 달 2~3일 각각 서울과 천안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콘서트를 한다. 최근 크레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크레머는 ‘한계가 없는 진취적인 연주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97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젊은 음악가로 구성된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창단해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크레머의 지도 아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내게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마치 꿈에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란 것과 같아요. 이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이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됐습니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4명의 핵심 창립 멤버와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돼 있는데, 그동안 제가 지키려고 노력했던 호기심과 유연함, 발견의 기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크레머는 75세가 된 지금도 늘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한다. 이번 내한 공연의 1부는 발트 3국 작곡가들인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형제들), 야캅스 얀체브스키스의 ‘리그넘’(나무), 아르투르스 마스카츠의 ‘한밤중의 리가’ 등으로 구성됐다. 2부엔 슈베르트 가곡 ‘겨울 나그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가 준비됐다.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발트 3국 출신의 연주자로 이뤄진 앙상블인 만큼 이곳 출신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해요. 우리 문화를 알릴 수도 있고요. 슈베르트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그의 음악은 심오하고 영혼의 깊은 곳까지 다가가죠. 저와 크레메라타 발티카에게 기념비적인 해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구소련 지배하의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난 크레머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65년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해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한 그는 6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69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70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세계적 연주자로 주목받던 그는 80년 옛 서독으로 망명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그의 감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콘서트에서 반전 메시지를 발표하고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곡을 연주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적으로 반대해요. 이건 현대의 유럽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입니다. ‘전쟁은 중단돼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절대로 그렇게 받아들여 져선 안 됩니다. 러시아 때문에 일어난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러시아 예술가들에게 반전 입장을 요구하는 것에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관심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이나 국가 전체가 저지르는 차별적이고 부당한 행동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가 다 정치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크레머는 5년 전 한국에 왔을 때 70세가 넘으면 리사이틀과 오케스트라와 협연은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75세인 지금도 투어를 다니거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정력적으로 연주한다. 그가 발표한 음반은 120장이 넘는다. 최근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앨범 구매가 줄었지만, 그는 음악가에게 앨범은 필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투어를 하면서 느끼는 신체적·물리적 어려움은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악이 먼저’(Prima la Musica)가 제 인생의 슬로건이거든요. 음악의 본질은 음반 판매량이나 연주자의 인기에 있지 않아요. 곧 저의 새로운 음반 ‘운명의 노래’(Song of Fate)가 나옵니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위해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