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마펫관 1층 로비에 98점의 그림이 걸렸다. 25일 이곳을 찾은 이들은 그림 앞에 서서 주선애(1924~2022) 교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울고 웃었다. ‘고 주선애 명예교수 일대기 서화전’ 개관식 현장에서다.
화폭에는 주 교수가 남긴 삶의 편린이 촘촘하게 남았다. 순교를 그린 그림에는 눈물을 흘리는 한 송이 장미가 있었다. 회개 기도를 표현한 그림에는 예수의 손길이 있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는 주 교수의 다짐이 담긴 그림에는 쪽배를 타고 홀로 밤바다를 건너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서화전에 걸린 아크릴화는 이순배 화백의 손끝을 거쳐 완성됐다. 이 중 넉 점은 주 교수와 함께 지내며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조명희 권사가 그렸고, 혜촌 김학수 화백의 작품도 한 점 걸렸다.
서화전은 원래 주 교수가 상수(上壽·100세)를 맞는 2024년, 100점의 작품을 걸어 개관하려 했지만 그가 98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2개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이 화백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작품을 완성했다.
이날 ‘외톨이의 삶, 섬김으로 즐거웠네’(두란노)도 독자들을 만났다. 조 권사가 기획하고 이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 펴냈다. 그림 묵상집과도 같은 책은 주 교수가 직접 말하는 듯한 다정함이 묻어난다.
주 교수 인생의 굵직한 변곡점 중 하나였던 제자 이상양(1942~1977) 전도사와의 만남은 이날도 눈길을 끌었다. 이 전도사는 70년대 서울의 분뇨 처리장이던 망원동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며 ‘망원동 성자’로 불렸던 인물로, 폐결핵으로 한 살 아들과 아내를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망원동을 소개한 주인공이 주 교수였다.
이 화백이 이 전도사 초상화 앞에 섰다. 그는 “제가 이 전도사님의 친조카”라면서 “주 교수님의 삶을 그리게 된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자 은혜의 결실이었다”고 고백했다.
개관식에 앞서 드린 예배에서 설교한 김동호 에스겔선교회 목사는 “스승 주 교수님의 고귀했던 삶이 죽음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면서 “삶이라는 릴레이를 달리신 교수님이 우리에게 바통을 넘겨주셨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걸 들고 뛰며 주 교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권했다.
외톨이라고 한 책 제목에 마음이 쓰였다. 주 교수는 정말 외톨이처럼 살았을까. 개관식에 온 각계각층의 지인을 보자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림 앞에 선 모두는 일생 이웃의 아픔을 싸맸던 주 교수가 뿌린 씨앗의 결실과도 같았다. 이들에게 주 교수가 속삭이는 듯했다. “여러분도 섬기는 삶을 사세요. 그리고 즐거움을 느끼세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