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주선애 교수의 섬김의 열정, 시와 그림에 담아

입력 2022-08-26 03:03
김운용(왼쪽 두 번째) 장로회신학대 총장이 25일 서울 광진구 대학 마펫관 로비에서 진행된 주선애 명예교수 서화전 개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마펫관 1층 로비에 98점의 그림이 걸렸다. 25일 이곳을 찾은 이들은 그림 앞에 서서 주선애(1924~2022) 교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울고 웃었다. ‘고 주선애 명예교수 일대기 서화전’ 개관식 현장에서다.

화폭에는 주 교수가 남긴 삶의 편린이 촘촘하게 남았다. 순교를 그린 그림에는 눈물을 흘리는 한 송이 장미가 있었다. 회개 기도를 표현한 그림에는 예수의 손길이 있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는 주 교수의 다짐이 담긴 그림에는 쪽배를 타고 홀로 밤바다를 건너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서화전에 걸린 아크릴화는 이순배 화백의 손끝을 거쳐 완성됐다. 이 중 넉 점은 주 교수와 함께 지내며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조명희 권사가 그렸고, 혜촌 김학수 화백의 작품도 한 점 걸렸다.

서화전은 원래 주 교수가 상수(上壽·100세)를 맞는 2024년, 100점의 작품을 걸어 개관하려 했지만 그가 98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2개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이 화백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작품을 완성했다.


이날 ‘외톨이의 삶, 섬김으로 즐거웠네’(두란노)도 독자들을 만났다. 조 권사가 기획하고 이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 펴냈다. 그림 묵상집과도 같은 책은 주 교수가 직접 말하는 듯한 다정함이 묻어난다.

주 교수 인생의 굵직한 변곡점 중 하나였던 제자 이상양(1942~1977) 전도사와의 만남은 이날도 눈길을 끌었다. 이 전도사는 70년대 서울의 분뇨 처리장이던 망원동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며 ‘망원동 성자’로 불렸던 인물로, 폐결핵으로 한 살 아들과 아내를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망원동을 소개한 주인공이 주 교수였다.

이 화백이 이 전도사 초상화 앞에 섰다. 그는 “제가 이 전도사님의 친조카”라면서 “주 교수님의 삶을 그리게 된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자 은혜의 결실이었다”고 고백했다.

개관식에 앞서 드린 예배에서 설교한 김동호 에스겔선교회 목사는 “스승 주 교수님의 고귀했던 삶이 죽음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면서 “삶이라는 릴레이를 달리신 교수님이 우리에게 바통을 넘겨주셨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걸 들고 뛰며 주 교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권했다.

외톨이라고 한 책 제목에 마음이 쓰였다. 주 교수는 정말 외톨이처럼 살았을까. 개관식에 온 각계각층의 지인을 보자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림 앞에 선 모두는 일생 이웃의 아픔을 싸맸던 주 교수가 뿌린 씨앗의 결실과도 같았다. 이들에게 주 교수가 속삭이는 듯했다. “여러분도 섬기는 삶을 사세요. 그리고 즐거움을 느끼세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