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약 3000만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격리가 필요한 코로나 감염증의 특성을 감안해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 결과인데, 그중 500만건은 코로나 감염자가 아닌 일반 환자들이 이용한 진료였다. 원격의료 논의에서 거론되던 대표적 문제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었다. 직접 방문할 필요가 없어 접근성이 좋아지니 너도나도 큰 병원을 찾으리라 예상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비대면 처방의 80%는 동네의원에서 발생했다. 그렇게 처방된 질병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기관지염, 비염, 역류성 식도염, 치매 등이 주를 이뤘다. 꾸준히 살펴야 하는 질병의 기존 처방을 다시 받아간 것이다. 동네의원을 통한 만성 질환 관리. 환자들은 원격의료를 그 취지대로 현명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제공한 원격의료 시험 기회는 이처럼 많은 시사점을 줬다. 이제 한시적 시행을 넘어 상시적 제도화를 준비할 때가 됐다. 정부는 25일 국민일보·쿠키뉴스 미래의학포럼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동네의원 중심의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재활치료자, 벽지거주자,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등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원격의료가 법제화되지 않은 곳은 6개국밖에 없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를 IC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다행히 코로나와 싸우며 비대면 진료를 체험한 의료계가 그간의 반대 입장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대도시와 지방의 의료 격차를 완화하고, 고령화 시대의 의료 수요 폭증에 대비하려면 원격의료 제도화와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우선돼야 하는 일이다. 비대면 진료의 오진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처방약 배송 과정의 오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검증 작업과 함께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의 시각이 아닌 환자의 시각에서 신중하게 풀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