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과자를 먹기 위해 낚싯대를 팽개치고 교회로 달려갔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며 ‘우리나라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왜 교회에 가자고 하냐?’며 어머니께 반기를 들고 교회에 발을 끊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예쁜 여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친구의 솔깃한 전도로 교회에 다시 나갔으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없어 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 1학년 때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하루아침에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 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가?’ 하는 깊은 혼란에 빠지며 마음을 채워줄 것을 찾다가 남달리 밝고 기쁘게 사는 친구를 따라 한마음교회에 갔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기도를 했는데, 내가 한 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했다며 친구가 놀랐다. 방언이 뭔지도 모르고 구하지도 않았는데 첫 기도에 방언을 받자 ‘바로 이거다!’ 하며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드러났다. 우산을 쓰고 혼자 걷는데 불현듯 ‘나는 구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기도 때 마태복음 16장 말씀이 생각나며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렸다. 답은 알고 있었지만, 입으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풀리지 않는 이 물음을 가슴에 안은 채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빨리 취직해야 하는 집안사정으로 경찰시험에 합격하고 민통선이 가까운 강원도 산골 오지 파출소로 발령이 났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첫 회식을 하던 중, 갑자기 교통사고 신고가 들어왔다. 즉시 직원들과 현장에 달려가 보니 경운기를 승용차가 들이받아 경운기 운전자가 현장에서 즉사한 사고였다. 생전 처음인 시신 수습 기억에 며칠동안 밥도 잘 먹을 수 없었다. 첫 사망사고를 겪자 문득 학창시절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책 내용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한적한 시골 밤길을 걷는데 불 꺼진 교회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하나님! 너무 답답합니다. 이 문제의 답을 꼭 가르쳐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친하게 지내던 교회 형님을 만났다. 형님은 구약의 예언을 얘기하며 한 아기가 오는데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썩지 않는 그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내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썩지 않고 살아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다.’는 것을 성령께서 선명하게 비춰주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을 읽는데, 도마에게 죽었다 살아났다며 못 자국이 난 손과 창 자국이 난 옆구리를 보여주시는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선명히 알아지며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내 마음을 휘감았다. ‘아!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시구나. 인간 예수가 창조주이시구나!’ 나는 창조주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제가 예수님을 무시한 죄를 용서해 주세요.” 마음 속 깊이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맞아 들였다.
마음이 새털처럼 가볍고 기뻤다. 데모 진압을 하러 간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같이 근무하는 동료에게 복음을 전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또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겠으니 자기가 죽으면 부모에게 알려달라고 했다는 다급한 무전을 받았다. 현장으로 달려가 그 청년을 찾아 사무실로 데리고 와 마주 앉았다. 이유를 물으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지옥같이 살 바엔 죽는 게 편해요.”라고 했다. 청년의 손을 잡고 기도한 다음, “죽음이 끝이 아니야.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너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어. 그래서 소망이 있는 거야! 너는 하나님의 자녀로 멋진 삶을 살 수 있어!” 하며 복음을 전했다. 청년은 반응이 없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리라 믿으며 돌려보냈다.
언젠가 나이트클럽 앞에서 30~40명이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야구 방망이와 칼을 휘두르는 아수라장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고, 큰 부부싸움 신고를 받고 달려가 대문에 들어서자 갑자기 남편이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와 위협해 고비를 맞은 적도 있다.
하루를 무사히 지내고도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긴장과 불안감에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정상적 삶을 살지 못하는 영혼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지는 분명하지만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해 주시며 현장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님을 알려 주셨다.
조폭들의 싸움 현장에도, 식칼의 위협에도, 주검을 보며 가슴 아파할 때도, 술 취한 사람에게 욕을 먹던 그 순간에도 주님께선 나와 함께 계셨다. 어둡고 답답한 현실을 바라볼 때도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새 힘을 얻었다. 가끔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삶 속에서 놓칠 때도 있지만, 새벽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를 고백하며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솔직하게 주님과 나누는 친밀한 교제가 너무 좋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난 예수님 안에서 산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 오늘도 나는 “예수님 사랑합니다.”는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안강훈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