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꼭 안으면 따뜻하죠, 그게 사랑이에요”

입력 2022-08-25 19:13
발달장애인 화가 정은혜가 지난 24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그림에세이집 ‘은혜씨의 포옹’ 출간 및 전시회 오픈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발달장애인 화가 정은혜(33)가 책을 냈다. ‘은혜씨의 포옹’이란 제목의 그림에세이집이다. 정은혜 그림 30점을 수록했는데, 그림마다 짧은 글을 붙였다.

그림의 주제는 포옹이다. 정은혜가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많다. 은혜씨의 포옹은 특별하다. 어색함이나 거리감, 긴장감, 경계심 같은 게 조금도 없는 포옹. 꼭 안아 준다거나 폭 안긴다는 말에 딱 맞는 포옹. 온전한 신뢰, 기쁨, 사랑을 보여주는 포옹.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아요. 사람을 안으면 제가 따뜻해지죠. 따뜻하면 기분이 좋아요. 포옹은 사랑이에요.”

책 출간과 함께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30일까지 전시회도 열린다. 24일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은혜는 출간 소감을 묻자 “재밌어요. 책 속의 글도 너무 마음에 들고, 기분이 딱 좋고, 눈에 들어오는 (표지의) 주황색 색깔도 맘에 들어요”라고 말했다.

출간과 전시를 기획한 이는 어머니 장차현실이다. 그는 “은혜씨한테 사람들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엄청 많은데, 포옹하고 있는 사진이 꽤 많다는 걸 발견했다. 이런 걸 그림으로 그리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때문에 거리두기가 예의가 된 세상에서 포옹이란 몸짓이 굉장히 그리운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은 20대의 정은혜를 세상 밖으로 꺼내줬다. 학령기가 지나서 갈 곳이 없고 일자리도 없던 그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운영하던 화실에 나와 청소 일을 하라며 그를 불러냈다. 거기서 정은혜는 청소 대신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2013년 7월 어느 날 은혜씨가 그린 그림을 보고 딸의 재능을 확신했다.

정은혜는 주로 사람 얼굴을 그렸다.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 북한강변에 플리마켓인 문호리리버마켓이 생기면서 정은혜는 거기에 부스를 내고 캐리커처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2016년 8월부터 한 장에 5000원을 받고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책에는 문호리리버마켓 감독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안겨 있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 옆에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시선 강박이 없어졌어요. 혼잣말, 이 가는 것도. 심한 행동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니까”라고 적었다.

정은혜는 그림을 그리면서 친구가 생겼고, 시선강박증이나 틱 장애를 극복했다고 한다. 조현 증상도 완화됐다. 장차현실은 딸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예술을 통해 이게 가능한가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은혜씨뿐 아니라 많은 발달장애인이 그림을 그리고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됐다. 발달장애인들이 예술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공감각(소리를 들으며 빛깔이 느껴지는 것처럼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일으키는 일)을 잃어버리지 않고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감각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인데 학교에 가고 사회화 과정에서 잃어버린다. 발달장애인은 사회화가 안 돼서 장애인이라고 하는데, 공감각이 예술 활동에서 발현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은혜는 2019년부터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채색 작업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정은혜의 인물 그림은 예쁘지 않다. 비례가 정확하지 않고 표정은 모호하다. 그런데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자꾸 보게 만든다. 만화가이자 동양화가인 장차현실은 “저는 배운 그림, 안 틀리게 그린 그림이다. 은혜씨는 다 틀리게 그리는데 완성도가 훨씬 더 높다. 그림을 보면 은혜씨가 가진 힘, 원초적 힘이 강렬함을 알게 된다”고 했다.

정은혜가 써낸 글들은 아이가 쓴 것처럼 정직하고 따뜻하다. 그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은 다 예쁘다고, 틀린 건 없는 거라고, 사회로 나와 같이 놀자고.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