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하지만 잘 몰랐던, 동남아의 모든 것

입력 2022-08-25 20:52 수정 2022-08-25 21:07
동남아시아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가진 지역이다. 혼종성과 다양성이 특징이다. 사진은 튀긴 바나나를 파는 노점상의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이전인 2019년 통계를 보면 동남아시아를 찾은 한국 관광객이 1000만명을 넘었다. 이 중 절반에 육박하는 430만명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태국 방콕이나 인도네시아 발리 역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로 꼽힌다.

동남아는 거대 시장이고 성장하는 지역이다. 한국 기업들이 근래 가장 많이 진출하는 곳이고 한류 최대 소비지이기도 하다. 중국 리스크가 커지면서 동남아의 전략적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 전문가 한청훤은 최근 출간한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기 위해 아세안·인도와 교역 비중을 꾸준히 늘려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동남아 노동자들은 이제 우리의 이웃이 됐다. 농촌마다 동남아 출신 며느리들이 가득하고 동남아인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의 농업과 제조업, 건설업 등을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동남아 이해는 여전히 여행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동남아에 대한 연구와 저술도 늘어나고 있지만 대중적인 책은 찾기 어렵다. ‘키워드 동남아’는 일반 독자들의 동남아 이해를 도와줄 입문서로 맞춤하다.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속 강희정 김종호 배기현 이한우 정정훈 현시내 6명의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정치 등을 망라하며 동남아 전체를 조망하게 해준다.


동남아라는 지역적 구분은 사실상 1943년 처음 만들어졌다. 미국이 대동아전쟁에서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군 사령부를 스리랑카에 설치하고, 이를 ‘동남아시아 사령부’(Southeast Asia Command)라고 부르면서 동남아라는 지역 명칭이 일반화됐다.

동남아에는 모두 11개국이 있다. 이 중 동티모르를 제외한 10개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즉 아세안(ASEAN)을 결성해 지역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협력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빼면 대부분 넓은 영토에 민족 구성도 복잡하며 언어와 문자, 종교와 문화도 다양하다. 특히 종교는 동남아 이해의 핵심이다.

“동남아시아 종교의 다양성은 10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의 문명적 교류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상좌부 불교의 경우 타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국교에 가까운 종교로 자리 잡았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서는 이슬람교가 주류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동티모르에서는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특정 종교가 주류로 자리 잡지 않은 ‘유이’한 국가는 싱가포르와 베트남이다.”

이 책은 동남아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지역이고 다양성과 혼종성이 동남아 문화의 특징이라고 규정하면서 30개의 키워드를 통해 동남아를 탐구한다. 역사를 다룬 1장에선 동남아에서 이뤄진 문명 교류사와 이주사를 돌아보고 이 지역에 중첩된 제국주의의 유산을 살핀다. “고대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 문명의 교차점이었고, 이슬람 상인들이 동북아로 향하는 관문이었으며, 포르투갈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국가들이 동북아시아로 건너가기 전 먼저 점령하고 식민화한 지역이기도 하다.”

사진 왼쪽은 동남아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국제 연대인 ‘밀크티 동맹’ 포스터(왼쪽 위)와 발리의 명물인 계단식 논, 오른쪽은 동남아의 다양한 향신료들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2장에서는 태국 향미(향기 나는 쌀), 인도네시아 음식, 베트남 커피, 발리 관광, 인형극 등 동남아 문화를 다룬다. 마닐라를 비롯한 필리핀에서 감지되는 라틴적 요소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베트남이나 태국 음식과 달리 인도네시아 음식이 왜 한국에서 대중화되지 않는지, 싱가포르 주택에서 주방이 작거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발리 문화의 기원이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400년간 인도네시아 지역을 지배한 마자파힛 왕국의 유산이라는 이야기나 21세기 발리 관광을 대표하는 우붓 지역의 매력을 논한 페이지들도 재미있게 읽힌다.

마지막 3장에서는 동남아의 현대 정치와 외교를 설명한다. 미얀마와 타이에서 독재자에 맞서는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저항을 살펴보고, 현재까지 건재한 타이 왕실의 역사를 조명한다. “타이 왕실은 오직 군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존경과 사랑을 무기로, 정당성 없는 군부 쿠데타를 승인함으로써 봉건제적 위계구조를 유지하는 왜곡된 입헌군주의 길을 걸었다.”

동남아의 외교는 ‘다자외교’라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싱가포르를 강소국으로 만든 이유로 경제력과 함께 ‘마이웨이 외교’를 꼽는다. 그러면서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현시점에서 이웃 강소국 싱가포르의 외교 양식에 대한 공부는 우리의 외교 방향에 대한 성찰에 자양분을 제공하리라 본다”고 조언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