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호 한국외대 글로벌안보협력센터 소장 겸 국제학부 교수는 최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1한’ 요구에 대해 “중국이 짜놓은 프레임”이라며 “이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22일 국민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드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보수층의 지지를 얻을 수는 있지만 이것을 얘기할수록 중국에 열세에 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황 소장은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수습되고 나면 미·중 간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어느 한쪽에 ‘올인’하는 외교는 지금부터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말아야 우리의 핵심 이익도 존중해 달라는 명분이 생긴다”며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춘 ‘실용 외교’를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중 수교 30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한·중 수교는 노태우정부 ‘북방 정책’의 피날레이자 화룡점정이었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적 고립에 빠진 상태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타개책이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중국은 김일성과의 관계까지도 접으면서 우리와 수교에 나섰고, 한국은 대만과 절연하면서까지 경제와 외교안보적 동기로 중국과 손을 잡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수동적으로 접근했다면 수교는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한·중 관계가 한·미, 한·일 관계와 다른 점은.
“한계를 갖지만 그걸 넘어설 필요성을 절감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념적으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기가 강하다. 경제적 수치, 인적 교류 상황만 보면 양국은 동맹을 맺어도 될 수준이다. 1945년 이후 약 50년간 단절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넘어서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서로를 가장 강하게 흡인하는 시기에 있다.”
-한·중 관계 현주소를 진단하면.
“현 상황에선 중국도 한국이 미·일 쪽에 완전히 가담했을 때 (자신들이) 분명히 부담을 안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을 적으로 돌리기는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이 적극적으로 대중 포위·압박전선에 들어가지 않게만 하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윤석열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평가한다면.
“전반적으로 느슨하게 관리돼 홀(구멍)들이 보인다. 특히 용어 선택에서 중국이 오해할 만한 여지가 많이 보인다.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 기조를 강조하는데 그 영어 표기가 ‘Global Pivotal State’다. 이건 미국의 외교·군사전략 용어인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에 가깝다. 중국에선 이 용어를 두고 미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드 정상화’라는 용어도 그렇다.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두 번째 발사대를 사들인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국내외에선 한국 정부가 사드를 또 하나 수용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용어를 신중하게 써야 한다.”
-중국이 최근 ‘3불·1한’을 공개 거론했다.
“사실 윤석열정부 입장에선 사드 얘기가 나오면 국내 정치적으로 나쁠 건 없다. 보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정부와 차별화하겠다고 3불·1한 폐기를 언급하면 중국이 짠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그럼 전 정부가 한 약속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사드는 우리가 언급할수록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사드 프레임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칩4(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 등 현안마다 미·중으로부터 상충하는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는 반걸음씩 늦게 가야 한다. 우리가 먼저 결정한다고 해서 미국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만 봐도 미국도 결국 자국 상황과 국익에 따라 결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중국의 역할도 필요하다.
“한·중 관계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다. 한·중 관계가 좋지 않은데 중국이 우리의 대북 정책을 지지할 리가 없다. 한·중 관계가 벌어지면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지도 안 생긴다.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중 관계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는.
“지금 당장은 관계가 너무 안 좋다.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모멘텀부터 만들어야 한다. 거부감이 덜한 민간 교류에서부터 종기처럼 톡 터트리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상 간 교류다. 순서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는 게 맞지만, 정 안되면 윤 대통령이 국제 행사 등을 계기로 방중하거나 제3국에서 시 주석을 만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가 견고해지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가 미국에 올인하게 되면 정말 위험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습되고 미·러가 한판 붙은 뒤엔 본격적으로 미·중 간 최종 결승전이 펼쳐질 것이다. 미국은 그때부터는 인도·태평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동북아에서 스스로 냉전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
-올 가을 시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된다. 그 이후의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시 주석이 3연임 하게 되면 외교의 그립에 좀 여유를 갖고 느슨하게 나오거나, 반대로 자신감이 넘쳐 오히려 강하게 가져갈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 중국의 핵심 이익은 건드리면 안 된다. 그래야 우리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달라고 말할 명분과 정당성이 생긴다.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뿐이다. 우리는 현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