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자후] 게임에도 ‘좋은’ 비평이 필요하다

입력 2022-08-25 20:54

게임 비평은 가능한가? 필요한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어떤 비평이 좋은 비평인가?

얼마 전 게임문화재단이 주최했던 비평공모전 심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게임 웹진 ‘GG’에 수상작들이 실렸는데, 이를 본 게임 애호가들 모두가 환호하진 않았다. 특히 한 수상작에 대해서는 게임이 아닌 ‘게임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글이라는 비판이 꽤 나왔다. 소설 독자나 영화 관객을 소환하는 문학·영화 비평은 별로 없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게이머마다 다른 경험을 한다. 공통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비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주어진 퀘스트를 마치지 못하거나 레벨 몇 개 올리다가 포기하는 게이머도 숱하게 있다. 똑같이 2시간을 투자해서 똑같은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비평하고 해석하고 논박하는 상황과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비평이 늘 텍스트 안쪽 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인터랙티브 예술에 대한 비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는가? ‘열린 결말’에 대한 비평과 토론이 무의미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텍스트 수용의 맥락과 역사도 중요한 비평의 대상이다. 게임에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게이머들 간의 채팅도, 게임 커뮤니티에서의 정보 교환이나 욕설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되어야 한다. 이 역시 또 다른 게임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게임 따위에 비평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게임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 딱 10년 전이다. 비평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작업에 게임의 자리는 없다는 주장도 시대착오적이지만, 활발한 비평 없이 게임이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 무모함도 오만이나 무지의 소산이다.

좋은 비평은 좋은 작품과 생명력 있는 문화를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생소한 개념이나 사상가를 불러내 잔뜩 멋을 부린 글을 좋은 평론이라 여기는 오해 또한 게임의 매체적 본질을 도외시한 시각이다. 플레이어의 참여, 즉 상호작용성이나 텍스트를 둘러싼 산업적 배치와 오락적 가치 역시 게임 비평의 핵심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좋은 비평은 좋은 게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게임 문화를 유도하고, 지속 가능한 건강한 게임 씬을 만든다. 자타칭 훌륭한 게임 평론가가 영화 리뷰 유튜버만큼 많아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윤태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