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벼농사 풍년이 예상되지만 쌀 산업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농민은 과잉공급 탓에 쌀값이 하락해 한숨을 짓는다. 농민에게서 쌀을 수매하는 농협은 재고가 넘쳐나면서 보관비용이 급등해 고민이 크다. 쌀값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고민해야 할 농정 당국은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쌀과 관련한 총체적 난맥상은 결국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쌀 행정’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22일 기준 가마니(80㎏)당 쌀 가격은 19만5736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24만3808원보다 5만원 가까이 급락했다. 2017년에는 14만원대였지만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농민들의 수입은 되레 감소한 셈이다.
쌀값은 지난해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수확하는 쌀이 시중에 풀리면 쌀 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도 벼농사는 풍년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쌀이 남아돌면서 이를 수매하는 지역 농협의 보관비용 부담이 커졌다. 창고에 보관한 쌀을 풀면 보관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대신 쌀값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한다. 조합원이자 고객인 농민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쌀을 시중에 풀지 않고 보관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올해는 아예 저장공간 확보도 힘들다. 농협은 고육지책으로 지역 농협에 쌀 8만t 보관비용인 무이자 자금 3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쌀 가격 하락에는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88.9㎏이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난해 기준 1인당 소비량은 56.9㎏으로 32.0㎏(35.6%) 급감했다. 육류 소비 증가 등 식습관의 변화가 쌀 소비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쌀값 안정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해 2007년 도입한 직불금 제도는 2020년 공익직불금으로 개편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쌀에 집중된 직불금 지급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되레 쌀농사를 지으며 직불금을 타가는 농민 규모를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만 발생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안 된다. 직불금 전체 예산의 70~80%는 쌀농사에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쌀농사 대신 다른 농사를 짓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 작물을 재배하는 이들에게 직불금을 더 주는 식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직불금 예산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큰 틀의 제도 개편을 농식품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