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읽지 못한 책

입력 2022-08-24 04:10

국민은행 1억1200만원, 신한은행 1억700만원, 하나은행 1억600만원, 우리은행 9700만원. 지난해 평균 급여는 이랬다.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1인당 6000만원 안팎을 수령한 터라 연봉이 더 높아질 거라고 한다. 이들이 속한 금융노조가 93.4%의 압도적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도 열었다. 노조는 “억대 연봉 귀족노조란 지적은 오해”라며 “시중은행이 아닌 국책은행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7200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7200만원밖에 안 된다’는 하소연을 하려던 것 같은데, 그것도 많은 직장인이 넘보지 못하는 액수여서 오히려 자랑처럼 들리고 말았다.

이들의 결의대회가 열린 날 인터넷에선 경남 창원시 8급 공무원의 사연이 회자됐다. “월급 180만원 받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겠습니까?” 지난 주말 어느 방송에서 이렇게 하소연한 그는 독거노인 1000명을 챙기는 사회복지 공무원이었다. 격무도 힘겹지만 미래가 더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폭등이 부른 자산 가치 인플레이션은 이런 저임금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에 높은 진입장벽을 쌓았다. 한때 선호직종 1위였던 공무원의 인기가 몇 년 새 급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직업 안정성이 커버해주지 못하는 격차가 벌어졌다.

이 공무원의 사연에 많은 댓글이 달릴 때 광주의 대학에선 열여덟 살 1학년 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보육원에서 자라 대입 관문을 통과한 그는 올해 초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방학이라 다들 집에 갔는데, 돌아갈 집이 없어 홀로 기숙사를 지키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만 18세가 돼서 보육원을 떠나며 받은 자립정착금 700만원이 바닥난 터였다. 세상에 어렵게 첫발을 디뎠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떤 이는 파업으로 7200만원 연봉을 하소연하고, 어떤 이는 방송에서 월급 180만원을 하소연할 때, 그가 텅 빈 잔고를 하소연할 곳은 유서뿐이었다.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짧은 생을 살다 간 ‘보호종료아동’의 명복을 빈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