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농촌 지역에 강의하러 가는 일이 있다. 마을이나 개별 농장 단위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기획과 홍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지방자치단체마다 슬로건과 로고를 개발하고 농축수산물 공동브랜드를 만드느라 각축을 벌였다면, 지금은 농촌 체험 상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어엿한 ‘상품’이어서 기획 단계부터 차별화된 콘셉트와 스토리텔링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일로 농촌 지역을 오가게 된 것이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농촌 체험 키워드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학생 단체가 주 대상이었던 농촌 체험이 소규모 개별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노사회라고 부를 만큼 초개인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다. 코로나도 한몫했다. 여행과 농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기존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새로운 마을 여행지를 개발하는 데 참여한다는 즐거움이 있지만, 사실 다양한 체험 콘셉트와 콘텐츠를 개발하는 건 농업인들에게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다.
이들이 기획하는 체험 상품의 콘셉트는 흔히 ‘건강’이나 ‘힐링’이다. 자연 속 체험이 몸과 마음에 이로운 건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차별화된 콘셉트가 아니다. 더구나 이들의 타깃은 여전히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족’이기 일쑤다. 아이와 함께 농산물을 수확하고, 그 농산물로 요리를 하고,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아기자기한 게임이나 이벤트를 하고, 한두 시간 무언가 만들어서 집에 가져간다. 이런 체험은 잊지 못할 추억을 쌓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며 손에 들고 갈 선물이 있다면 더욱 뿌듯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체험 상품은 봄이면 논산 딸기밭, 가을이면 내장산 단풍코스를 권하는 패키지 상품처럼 왜 이렇게 유사하고 획일적인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만 타깃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30대 남성, 50대 여성들만을 위한 체험이면 어떨까? 외국인 여행객들, 도시의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직접 농산물 수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체험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충분한 체험일 수도 있다. 혼자 와서 고요하고 찬찬히 또는 혼자서 신나게 놀다 갈 수 있는 체험이어도 좋지 않은가.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수의 31.7%에 이른다. 20대와 30대가 전체 1인 가구의 35% 이상을 차지한다. ‘혼행’이라고 불리는 나 홀로 여행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관광공사도 최근 혼행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부산관광공사는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위한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아직도 불편하다. 무엇보다 음식점의 문전박대가 그렇다. 젊은 여성이 혼자 여행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시절부터 남의 눈치 안 보고 종종 혼자 다녔던 터라, 혼행이나 혼밥 트렌드가 오히려 뒤늦게 여겨지는 나도 최근 전남의 한 도시에서 혼자 식사할 음식점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 도시가 자랑하는 남도 한정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전라도 백반조차 2인 이상만 가능했다. 정약용 선생이 귀양지에서 홀로 마주했음이 분명한 아욱국 정식조차 1인은 받지 않았다. 손님이 많은 시간을 피해갔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특유의 한상차림을 1인분 가격으로 내는 건 다소 고민이 따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부러 찾아온 여행지에서 1인 여행자는 이토록 소외돼도 좋은 것일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다는 포상의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던 ‘고독한 미식가’의 오프닝 내레이션이 통하지 않는 농촌. 혼자라는 이유로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조차 빼앗긴 여행지에서 어떤 치유를 기대할 수 있을까? 혼행족을 위한 농촌 체험 상품은 고사하고.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