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무 아래 숨겨진 도시 브랜드

입력 2022-08-24 04:05

팬데믹 이후 첫 해외여행으로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처음 방문한 도시 곳곳의 공원과 정원과 식물원과 거리를 새벽부터 밤까지 걸었다. 공원주의자에게 싱가포르는 교과서나 다름없다. 도시 경쟁력을 녹색(Green)에 두고, 1967년 정원도시(Garden City)를 선언한 후 정원 속 도시(City in a Garden)를 거쳐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로 도시 브랜드를 확장 중이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처럼 환상적 테마정원도 만들지만 서울의 1.2배 면적에 590만명 이상 모여 사는 대도시에 공원을 한없이 늘리긴 어렵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공원과 공원을 파크 커넥터(Park Connector)로 연결하고, 고층 빌딩마다 수직정원과 옥상녹화 등 입체 녹화를 유도하며, 커뮤니티 인 블룸(Community in Bloom) 운동으로 주민이 정원과 텃밭에 빠져들도록 노력한다.

어디서나 만나는 거대한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찬찬히 보면 나무 아래 그루터기 주위로 넉넉히 퇴비가 둘러져 있다. 밟으니 트램폴린처럼 폭신하다. 가드너가 곳곳에서 죽은 가지를 자르고 꽃과 나무를 옮긴다. 거대한 나무와 세련된 정원은 따뜻하고 습윤한 날씨와 전문가 손길의 합작품이다. 내 키 정도로 작은 나무도 사이사이 많은데, 우량한 형질의 품종을 엄선해 육묘장에서 직접 키운 묘목들이다. 작은 나무를 심어 건강하고 균형 잡힌 형태로 키우는 건 거대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필요조건이지만, 전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때그때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우리 현실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우리 공원은 전문성을 갖춘 현장 인력이 거의 없다. 행정과 민원에 지친 사무직 공무원과 비숙련 비정규 관리 인력뿐이다. 현장에 상주하는 식물 전문가와 가드너가 없으니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을 명소는 언감생심. 작은 나무를 거목으로 키워내듯, 다양한 현장 전문가와 함께 커나가는 도시 브랜드를 상상한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