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바리스타 목사님… 외딴 섬을 행복한 섬으로

입력 2022-08-24 03:04

전남 여수시 돌산항에서 뱃길로 10여분을 들어가야 당도할 수 있는 횡간도. 10여년 전, 하나 남은 초등학교까지 폐교돼 주민 이탈이 많았던 이 섬은 이제 ‘행복한 섬이자 더 행복해질 섬’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중심에 횡간도교회 성도들과 담임 이기정(58·사진) 목사가 있었다.

이 목사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때 주민 1000여명이 거주했던 섬이었는데 8년 전 부임 당시 주민은 10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변화는 이 목사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주민들 중 멸치잡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멸치가 들어올 때면 잠도 못 주무시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질 못하시더군요.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평소 맛있게 드시는 빵을 드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날로 3개월 동안 시내까지 왕복 6시간 걸리는 학원을 오가며 제빵 기술을 배웠죠(웃음).”

이 목사는 이후 70㎡(약 23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해 ‘하늘사닥다리’란 이름의 마을 카페도 만들었다. 메뉴는 소보루빵과 단팥빵으로 단출했지만 매주 이 목사가 손수 만든 400여개 빵은 주민들의 마음을 녹였다. 하늘사닥다리에서는 현금과 카드를 받지 않는다. 카페에서만 쓸 수 있는 ‘횡화’로 결제할 수 있다. 지역 화폐 개념의 횡화를 만든 것도 이 목사의 아이디어다.

성도들은 예배 참석, 식사 준비, 환경 미화 등에 동참할 때마다 횡화를 받을 수 있다. 1인 1봉사가 생활화된 성도들은 차곡차곡 모은 횡화로 주민들에게 빵과 음료를 대접한다. 이 목사는 “섬 교회라 해서 후원과 지원에 기대기보다는 성도 스스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선한 영향력으로 뿜어낼 때 공동체에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횡간도에서 나고 자란 강주복(74) 장로는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준 목사님 덕분에 교회를 핍박하던 주민들도 지금은 교회를 횡간도의 자부심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 준비해 온 ‘인생 박물관’ 프로젝트는 마무리 단계다. ‘얼굴이 한 사람의 인생이자 마을의 역사’란 의미를 담아 주민들의 얼굴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으려고 한다. 프로젝트의 의미에 공감한 한 화가가 인물화를 그려 카페 옆에 마련된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아 여수에 지교회인 ‘예수안에 몽근교회’도 세웠다. 이 목사는 “섬 한 편에 작은 나무집을 마련해 쉼을 누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아일랜드 스테이’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