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남자인데 고아, 무직이라는 이유로 대출이 모두 거절됐습니다. 현재 벌금 미납으로 대출을 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정말 급합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인 박정혁(가명·27)씨는 6년 전 700만원의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급전을 구하려고 한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그는 당시 태국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서버 등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중에는 한 푼도 없는 상태였다.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박씨는 자립 후에 성공한 인생을 꿈꿨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동네 삼촌들’이었다.
동물사육사가 되고 싶었던 박씨는 2년제 대학의 관련 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런데 시설에서 입학금 부담을 이유로 대학 진학에 반대했다. 결국 그는 시설에서 제안한 기숙사가 있는 1년제 자동차 수리전공 직업학교에 떠밀리듯 원서를 넣었고,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에는 보호 기간 연장도 요청할 수 없었다. 독자 생존에 나서야 했지만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장 돈이 급했던 박씨는 숙식을 제공해주는 공장일, 조기잡이 뱃일 등을 했다. 돈을 모으는 법도 몰랐던 그는 얼마 되지 않았던 월급을 금세 써버렸다. 이후 정해진 거처 없이 막노동을 하며 PC방에서 눈을 붙이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 30대 후반 남성 2명이 접근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며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알면서도, 외로워서 속았다
박씨는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입양 기관에 맡겨졌다. 그리고 어른들로부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입양과 파양을 4번 당했다. 그 사이 박씨는 중학생이 됐고 보호시설에 보내졌다. 시설에서도 정 붙일 곳은 없었다. 박씨가 ‘삼촌’들을 믿고 마음을 연 건 가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촌들은 그런 박씨의 마음을 쉽게 이용했다. “급하게 해결해야 할 빚이 있다”며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 4대를 개통해 소액결제와 기프티콘을 구매하는 ‘핸드폰깡’을 시켰다. 1대당 200만원씩 800만원의 빚이 박씨 앞으로 쌓였다. 박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외롭게 혼자 있느니 삼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불어난 빚을 걱정하자 삼촌들은 박씨에게 태국에서의 불법도박 사이트 관리를 제안했다. 박씨는 “한 푼도 없는 내가 빚을 갚고 결혼도 하고 집을 사는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삶으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태국 생활 3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박씨 명의 통장으로 조직 자금을 관리해온 탓에 경찰에 붙잡혔다. 태국에서 번 돈은 약 700만원이었지만, 고스란히 7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돈은 이미 써버린 상황이었고, 벌금을 갚지 못한 박씨는 수배자가 돼 도망을 다녔다.
막막했던 박씨가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무직자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달렸다.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주택 구매자금을 내줄 테니 집을 사서 담보 대출을 받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전세사기 조직의 총책이었다. 박씨는 대출금을 받지도 못한 채 빚 독촉에 쫓겨 다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됐다. 박씨 앞에는 1억원가량의 빚이 남았다.
범죄 표적 되는 자립 수당
이채훈(가명·22)씨 역시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동네 형’들에게 ‘핸드폰깡’을 당했다. 형들은 이씨 명의로 휴대전화 6대를 만들어 소액결제를 했고, 갚지 못한 이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씨 명의의 사업자를 세워서 대출을 받아 가로채기도 했다.
시설에서 나오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주어진다. 자립을 시작하며 구한 LH청년주택은 동네 형들의 아지트가 됐다. 이씨는 반년도 살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궁핍하던 이씨는 지난해 소셜미디어에서 100만원을 준다는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보고 적힌 번호로 연락을 했다. 전세사기 조직에 명의를 빌려주는 일이었다. 전세 이중계약을 맺어 다른 세입자의 전세금을 빼돌리는 일에도 가담했다. 다른 피해자가 생겼고, 이씨에겐 8000만원 상당의 빚이 남았다.
자립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채 홀로 선 이들은 전과자가 된 후에야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에 막막함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박씨는 “시설에 있을 때부터 같은 시설 출신 형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익숙하게 봤고, 절박하다보니 ‘돈만 벌 수 있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설에서 나온 후 먼 미래나 인생을 계획하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아무도 그런 걸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눈앞의 배고픔과 가난을 해결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