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이렇게 어두운 밤길만을 걸어야 했을까요. 항상 원망하면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강영진(가명·26)씨는 만 18세가 되면서 ‘진짜 고아’가 됐음을 느꼈다. 보호 기간 종료를 이유로 시설에서 나오는 순간 그를 감싸던 최소한의 온기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기댈 어른 한 명 없던 그는 극단적 선택을 거듭하다 범죄에도 손을 대 현재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자신을 돕는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한 번도 속해 본 적 없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매년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2500명가량이 시설 밖 세상으로 내보내진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가정 학대에 시달린 경우, 부모의 이혼·사망 등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가정 대신 시설에서 자라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면 국가의 보호는 끝난다. 개정 아동복지법 시행으로 이제 원하는 경우 24세까지 시설에서 머물 수 있지만, 보호 기간 연장을 하는 경우는 절반에 그친다.
시설을 나올 때 이들은 통상 자립정착금 500만원에 월 35만원씩 5년간 지원되는 자립지원수당을 받는다. 홀로서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민 어른들 중엔 이마저 가로채거나 범죄로 이끄는 이들도 많다. 힘들게 찾은 부모로부터 또다시 외면받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민일보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호종료아동들은 “시설 밖으로 나온 뒤 손을 잡아줄 어른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버팀목이 없는 아이들은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부모 학대로 시설에서 자란 이채훈(가명·22)씨는 시설을 나온 후 한동안 ‘아파트 옥상’에서 지냈다. 임대주택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한 그는 이후 갈 곳이 없어 노숙을 했다. 하지만 “어린 놈이 벌써부터 왜 여기에 있냐”고 시비를 거는 어른 노숙인들에게 쫓겨나기 일쑤였다. 할 수 없이 아파트 옥상으로 몰래 올라가 잠을 청해야 했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30년 뒤에도 자신의 삶이 지금 그대로일 것이라는 절망감이다. 22일 광주의 한 대학교 강의동 뒤편에서는 18세의 자립준비청년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대학에 합격한 후 올해 초부터 보육원을 나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보육원을 나올 때 받았던 약 700만원의 지원금이 바닥나 금전 고민을 했다는 이 학생이 남긴 쪽지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2007년부터 자립지원 전담요원을 시설에 배치하는 등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홀로 서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사후관리 대상자 1만2796명 중 연락이 두절된 보호종료아동은 3362명에 이른다. 4명 중 1명은 시설을 나간 후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자립준비청년 모두가 자립에 실패하는 건 아니다. ‘시설 출신’이라는 편견을 딛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다. 국민일보는 아직 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열여덟 어른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함께 설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을 찾고자 한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