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머리 열지 않고 코·눈으로 내시경 넣어 제거한다

입력 2022-08-22 22:01
‘뇌하수체선종’ 수술 많이 활용
수술 후 3개월 코 세게 풀거나
무거운 물건 드는 것 자제해야
여성이 남성보다 배 가량 발생
머리 상층부 종양은 제거 못해

고려대안산병원 신경외과 김상대(왼쪽) 교수와 이비인후과 서민영 교수가 뇌하수체선종 환자의 코로 내시경과 수술 기구를 넣어 종양 제거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흔히 뇌종양 수술이라고 하면 머리를 열고 제거하는 방식을 떠올린다. 근래엔 코나 눈을 통해 미세 내시경과 수술 기구를 넣어서 뇌종양을 없애는 수술법이 급부상하고 있다.

고려대안산병원 뇌하수체 뇌내시경센터 김상대(신경외과) 교수는 22일 “대장이나 위 내시경에 비해 아직 생소한 개념인 뇌내시경 수술은 광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최근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면서 “두개골을 절개하고 종양을 제거하는 개두술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통증·합병증이 적어 회복 속도가 빠르며 흉터가 거의 남지 않아 환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뇌내시경 수술은 뇌가 얹혀있는 두개골의 밑바닥(뇌 기저부)에 생긴 종양을 제거할 때 가능하다. 머리의 상층부(전두엽 등)에 생긴 종양 제거는 할 수 없다.

김 교수는 “뇌종양이 양성이든 악성이든 상관없다. 내시경으로 제거 가능 여부는 종양의 위치와 크기로 결정된다”고 했다.

뇌내시경 수술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질환은 ‘뇌하수체선종’이라는 양성 종양이다. 뇌하수체는 코 바로 뒤쪽 뇌의 중앙에 위치한 1.5㎝ 크기의 작은 기관으로 성장과 대사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뇌하수체에 종양 등 문제가 생기면 생리를 안하거나 불임, 성욕감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또 종양이 커져 바로 위 시신경을 누르면 시야가 좁아지거나 두통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나 안과, 신경과를 찾았다가 뇌하수체선종이 의심돼 의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체 뇌종양의 10~15%를 차지하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진료 환자가 2017년 2만3572명에서 지난해 3만3503명으로 42.1% 증가했다. 유전·환경적 요인 보다는 건강검진과 뇌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진단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배 가량 많고 30~60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국내 뇌내시경 수술은 2015년쯤 관련 학회가 결성되면서 젊은 의사들 중심으로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뇌하수체선종 같은 두개골 밑바닥 중심부에 위치한 종양을 제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깊숙한 곳에 종양이 있는 탓에 개두술을 적용해 머리를 열고 위에서부터 병변 부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상 뇌조직을 파헤치는 것이 불가피했다. 이로인해 수술 중 정상 뇌조직이나 혈관 손상 위험이 상대적으로 컸다.

뇌하수체는 코와 인접해 있어 콧속으로 내시경을 넣어 밑에서부터 병변 부위에 접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렇다고 해도 뇌하수체 위로는 시신경, 양 옆에는 뇌혈관, 안구를 움직이는 여러 신경들이 위치해 있어 수술 중 신경이나 혈관 손상의 위험이 상존한다. 이 때문에 경험 많은 뇌내시경 전문의로부터 수술받는 게 권고된다.

뇌내시경 수술에서는 신경외과 의사의 종양 제거뿐 아니라 양쪽 콧구멍으로 내시경과 수술 기구를 넣어서 머리 바닥까지 도달하도록 콧속의 길을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코의 내부 구조에 정통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협진이 필수적이다. 수술 후 코 불편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콧속 점막을 손상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선종 환자의 코 뒤에 자리잡은 종양(왼쪽 동그라미 안)과 내시경 수술로 제거된 후의 MRI영상. 고려대의료원 제공

이 병원 서민영 이비인후과 교수는 “수술 후 이틀 정도는 코 안에 지혈하는 패킹이 가득차 있어 숨쉬는 것이 불편할 수 있고 약 3~4주 동안은 콧물 코막힘 코피 등 증상이 생길 수 있다”며 “일시적으로 후각 기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회복된다”고 조언했다. 수술 후 3개월 정도는 코를 세게 풀거나 콧구멍을 파거나 무거운 물건 드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뇌에 압력이 가해지면 뇌척수액이 샐 수도 있다. 아울러 코에서 수돗물 같은 맑은 액체가 나오거나 열이 나는 경우, 두통이 새로 생기거나 심해지는 경우 즉시 병원에 와서 검사받아야 한다.

김상대 교수는 “이제 머리를 열고 하는 뇌종양 제거 수술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며 “다만 종양이 너무 커서 시신경을 누르거나 혈관을 감싸는 정도가 심한 경우는 불가피하게 코를 통한 내시경 수술과 추가해 개두술이 한번 더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코가 아닌 안와(안구가 들어있는 두개골 뼈의 빈 공간)를 통해 내시경을 넣고 뇌종양 제거를 시도하는 등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눈 뒤쪽에 위치한 측두엽 부위, 즉 뇌의 좌우면에 생긴 종양이 대상이다. 눈썹이나 눈꺼풀을 미세하게 절개한 뒤 안구를 코 쪽으로 1~2㎝ 정도 밀어내고 내시경과 수술 기구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한다.

김 교수는 “코를 통한 뇌내시경 수술은 코와 인접한 뇌종양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측두엽과 인접한 안와를 통해 뇌의 중심부뿐 아니라 양쪽 측면의 종양도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됐다. 해부학적으로 눈 뒤가 바로 머리뼈의 밑바닥”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안과나 성형외과, 내분비내과, 영상의학과 의료진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안와 내시경 수술은 도입된지 얼마 안돼 아직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향후 1~2년 안에는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술 후 눈이 충혈되고 부어오르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뇌내시경센터에서는 뇌하수체선종 뿐 아니라 후각신경아세포종, 청신경초종, 뇌수막종, 부신경절종양, 척삭종 등 다양한 뇌종양을 내시경으로 수술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