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청와대 이전과 풍수지리설

입력 2022-08-22 04:05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위대한 사상가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만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시를 썼다.

‘제비란 놈 터 잡으면 옮기길 꺼리는데(燕子開基惜屢移)/ 마루 천장 여기저기 진흙 칠해 놓았네(謾將泥點汚梁楣)/ 요즈음 풍수설이 습속이 되었으니(邇來風水渾成俗)/ 생각건대 새 중에도 지사(地師)가 있는 게지(疑亦禽中有地師)’

‘지사’는 남의 묘터를 잡아주는 사람을 말하는데 다산은 제비를 빌려서 세상에 풍수지리설이 만연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다산은 평소 풍수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풍수론’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사의 아들이나 손자로서 홍문관 교리나 평안도 관찰사가 된 자를 몇 명이나 볼 수 있는가?… 재상으로서 풍수설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도 자손이 없는 사람이 많고, 사서인(士庶人)으로서 풍수설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도 괴이한 재앙을 당한 사람이 많다.”

그는 풍수설을 “꿈속의 꿈이고 속임수 중의 속임수”라 했다. 그는 환갑날에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을 썼는데 그중에 “내가 죽으면 집의 뒷동산에 매장하고 지사에게 묻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풍수설을 배척했다. 그래도 아들을 믿지 못했음인지 그는 임종하기 전 아들에게 다시 이렇게 당부했다. “아비가 살아있을 때 아비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불효이다. 아비가 죽은 후에 생전의 아비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더 큰 불효이다. 이것은 시체가 말이 없다고 해서 시체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다산이 서거했을 때 큰아들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다산이 거처하던 여유당(與猶堂) 뒷동산에 매장했다. 지금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 유적지에 가면 복원된 여유당과 바로 뒤에 있는 다산 묘소를 볼 수 있다.

다산이 풍수설만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얼굴 모양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관상법(觀相法)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며, 갑을(甲乙)… 자축(子丑)…을 따져 그것으로 택일(擇日)하고 그것으로 사람의 사주를 보고 그것으로 길흉을 점치고 그것으로 수명을 예측하는 등의 행위들도 단호하게 배격했다. 다산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비합리적인 모든 속설을 부정했다. 그는 철저한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합리적 사고가 다산을 조선 제일의 학자로 만들었으며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낳게 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손 없는 날’을 가려서 이사한다. 선거 때가 되면 유명 역술인들 집 앞은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산이 그토록 비판했던 풍수지리설도 여전히 살아있다.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부친의 묘와 포천에 있던 모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하고 집도 동교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했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상에서는 풍수설에 따라 이장하고 이사했다는 뒷말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 유명 정치인들도 선거를 앞두고 조상의 묘소를 옮겼다. 조상의 묘소를 옮긴 이들 정치인 중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다. 모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지사의 말을 듣고 이장했을 터인데 결과를 보면 지사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지난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도 풍수설 논란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겼는데, 그 이유를 “권위주의 잔재를 청산하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물론 그런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이전에는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깊은 무속인 건진 법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청와대가 흉지(凶地)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길지(吉地)인지 흉지인지 나는 모른다. 또 알고 싶지도 않다. 청와대를 거쳐간 대통령들이 불행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 불행을 어찌 청와대의 입지적 조건 탓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말이 소문에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말 풍수설에 따라서 대통령실을 이전했다면 300여년 전에 살았던 다산 선생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